중증 장애인들의 '자기 결정권'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 연재 ] <6>사전의료의향서

최영아
2016년 08월 17일(수) 13:54

의사로서 사망진단서를 쓸 때 꼭 체크 할 부분은 이 죽음이 사고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병사(病死)라면 직접 사인, 간접 사인, 선행 사인 등을 명시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 직접 사인에 '심장마비'가 들어가야 사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내과의사로서의 사망진단서의 선행 사인은 크게 암과 관련된 합병증들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내과적 만성병과 연관된 합병증들로 인한 것이냐로 나눌 수 있다.
 
대개 암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내과적 만성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보다 젊은 경향이 있다. 암은 젊을수록 진행속도도 빠르고 젊기 때문에 더 많은 치료를 하게 된다.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은 대부분은 뇌 전이가 없다면 명료한 의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암의 합병증으로 죽게 된다. 특히 항암치료 합병증으로는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많이 떨어지는 시기가 오는 데 이때 흔히 폐렴에 걸릴 수 있다. 폐렴은 폐를 침범해서 호흡곤란을 야기시키고 웬만한 항생제로는 잘 치료가 되지 않는 강력하고 다양한 세균들이 분포한다. 숨쉬기가 곤란해지고, 결국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암환자들의 경우 마약성진통제로 정신이 혼미하더라도 대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명료하다. 그래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다양한 내외과적 합병증과 이 병들을 조절하기 위한 치료과정과 투약, 그 약들의 상호작용으로 오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경우는 좀 다르다. 노화 자체가 혈액순환 속도저하와 혈관 자체에 많은 노폐물들이 끼게 되어 온 몸 구석구석의 혈관이 좁아지고 순환이 잘 안되다가 혈관이 반복적으로 막히는 것과 그것으로 인한 다양한 질병들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혈관병과 합병증으로 복용하는 약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대개는 뇌손상을 포함한 장기의 손상이 반복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뇌손상으로 인한 치매에 걸리면, 치매로 인한 내외과적 신경정신과적 합병증을 겪게 된다. 이런 경우 흡인성 폐렴과 변비 등이 걸리기 쉽고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느려져 활동량이 적어지고 골다공증이 심해서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뿌러지게 된다.
 
필자가 노숙인들을 포함한 취약계층 진료를 오래하면서 느낀 것은 취약계층일수록 젊은 나이에 많은 질병들로 인해 뇌병변장애, 정신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다가 결국 치매상태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장애로 인해 버려지고, 죽는 그 순간까지 고아원 시설 내지는 노숙인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문제는 이미 뇌손상과 장애로 인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자체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재산권을 행사하도록 돕는 후견인 제도가 있는데 후견인들이 죽음을 결정한다고 하면 그 자체도 위험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의 구체적인 항목을 논하기 전에 먼저 뇌손상을 포함한 다장기 손상이 많은 치매 노인들이나 젊은 중증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결정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치료하는 것이 인권이고 윤리적인 것인지에 대해 사회안에 공통적 가치관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사전의료의향서는 굉장히 위험한 문서가 될 수 있다.

최영아/도티기념병원 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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