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22~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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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17일(수) 11:47

월-열매 맺는 삶
본문 : 요 15:1~8
찬송 : 515장

농부의 영광은 가을의 결실에 달려 있다. 농사가 잘되어서 결실이 많으면 농부는 기뻐한다. 결실은 농부를 빛내 준다. 그러나 결실이 없으면 농부가 한숨짓게 되고, 이것은 농부로서의 수치가 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의 농부,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라고 말한다. 가지의 존재 이유는 열매를 많이 맺는 데 있다. 그래서 농부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농부의 이름을 빛나게 해준다. 본문을 보면 그냥 과실을 맺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맺어야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엄중하게 경고한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것은 심판을 말한다. 그러기에 열매를 맺는 것은 신자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들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사랑의 열매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쾌락, 뇌물, 끝없는 소유를 위해 약한 자를 핍박하고 모함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으로 의로움을 드러내셨다. 하나님 백성의 가슴에는 뜨거운 예수님의 심장이 들어 있어야 한다.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실망하는 것은 사랑의 열매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전도의 열매이다. 신자는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은 전도하여 많은 사람에게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자 세상의 빛이셨다.
 
첫째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근거로 예수님 안에 그것도 지속적으로 거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 안에 거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통해 그 말씀 안에 거하면서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된다. 예수님 안에 머물 때 열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열매는 관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도'이다.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주님 안에서 갖는 소원들은 주님이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고자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신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인생이 되자.
 
오늘의 기도
 
풍성한 열매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명환 목사
찬동교회

화-인간은 생각하고, 신은 웃는다
본문 : 시 2:1~4
찬송 : 426장

유대인들에게는 "인간은 생각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감탄할만한 속담이 있다. 왜 신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을 보고 왜 웃는 것일까?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생각이 오히려 그 진리로부터 더 멀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한 10가지 목록을 작성 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 십 년 동안 살아왔으니까 그 정도는 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10가지 목록은 모두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작성된 10가지 목록을 가지고 "이제부터 당신은 10가지다"라고 말을 한다면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폭력과 억압이 되고 말 것이다.
 
오늘 시편 말씀에도 인간의 생각에 대한 하나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하나님을 웃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시고 웃으신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기 확신에 빠져 있을 때도 하나님은 웃으신다. 의심과 염려만큼 해로운 것이 '확신과 확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과 확정이야말로 한 사람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영역을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나쁜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나쁜 사람도 '더 나쁜 사람'에 비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나쁜 사람에 대한 결론을 단 하나로만 정의내린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삭개오를 만나주시되, 조건 없이 그를 환대해 주셨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몇 가지 이야기로 고정시켰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가 비록 나쁜 사람이지만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미래를 바라보셨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란 어쩌면 하나님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부단히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을 웃게 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어리석음을 부단히 교정하여 진리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한정된 생각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늘 하나님께 지혜와 길을 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후회하는 선택을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현 목사
충광교회

수-지혜로운 자녀로 키워라
본문 : 잠 27:11
찬송 : 200장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
 
요즘 부모를 보면 참 극성이다. 자식들 공부시키는 일에 열을 높인다. 그런데 그게 과연 자식을 지혜롭게 만들려고 공부를 시키는 것일까? 그런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이 좋았으면, 좋은 학교에 갔으면, 출세했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세대는 아는 것은 많은데 지혜롭지는 못한 것 같다. 자녀를 지혜롭게 만들려는 부모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것은 많은데 지혜롭지 못한 자식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 마냥 불안정하다. 밖에 내보내기에 위험천만하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인생을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식은 어디에 내놓아도 염려할 일이 없다. 어디를 가든지 자기 몫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자녀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자식이 지혜를 얻도록 양육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신앙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신앙적으로 교육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에 꼬박꼬박 다니게 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신앙적 교육이 완성되려면 말씀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말씀이 갖는 위력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 나이에 그걸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부모가 도와주어야 하고, 교회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이 어려운 것을 부모와 교회가 일궈주어야만 지혜로운 자녀들이 될 수 있다.
 
제일 먼저 투자해야 한다. 시간과 노력을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신앙의 깊이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지혜롭지 않은데 교회가 스승이 되지 못하는데 우리의 자녀들이 어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먼저 지혜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똑똑한 부모, 처세에 능한 교회의 어른들은 우리 자녀들을 더 어리석게 만들 뿐이다. 우리가 먼저 지혜로워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든다.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 우리 자식들이 지혜롭게 살아가면 우리는 자식을 우리가 지혜로운 증거로 제시할 수 있다. 잘된 자식을 보고도 부모를 어리석다 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오늘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살아가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세상의 지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자녀들 앞에서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진성 목사
통영교회

목-절망중에 기도하라
본문 : 사 38:1~8
찬송 : 539장

오늘 절망의 벽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유다 왕국의 14번째 왕 히스기야왕이다. 죽음의 질병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를 절망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피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히스기야는 이 엄청난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히스기야는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다. 히스기야는 절망하지도 원망하지도 체념하지도 도피하지도 않았다.
 
첫째, 히스기야는 절망중에 부르짖어 기도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 벽을 향했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지금 히스기야는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언제든지 이러한 문제의 벽 앞에 설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벽과 같은 문제 앞에 서게 되면 실망하고 절망해 버린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벽 앞에 주저앉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벽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절망의 벽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그 문제의 벽을 향해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절망 중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기도는 절망의 벽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도는 절망 중에도 부르짖는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문제의 벽을 향하여 믿음의 기도로 도전하길 바란다. 문제는 우리들이 그 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벽이 절망과 실패의 벽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벽이냐 하는 것이다. 절망의 벽을 믿음으로 깨뜨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줄 수 있다. 이것을 믿을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둘째, 히스기야는 절망중에 통곡하며 기도했다. 그는 조용히 침묵하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눈물로만 기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심히 통곡을 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되 특별히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보신다. 그러한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였다. 나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고 기도해야 한다. 히스기야는 애통하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았다. 히스기야는 통곡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통곡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하는 히스기야에게 찾아오셨다. 그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그를 안아 주셨다. 하나님은 절망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히스기야를 살려주셨다.
 
절망의 장벽, 죽음의 장벽, 가난의 장벽, 실패의 장벽, 시험의 장벽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절망 중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통곡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인생의 문제 앞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문섭 목사
좋은교회

금-큰 승리보다 중요한 작은 승리
본문 : 행 28:1~10
찬송 : 350장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 그런데 계속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계속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성공도 사건이고, 실패도 사건이다. 사건은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은 남는다. 실패하는 사람은 성공의 조건을 가지고도 실패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의 조건을 가지고도 성공한다. 계속 성장하는 사람은 결과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성공 실패가 아닌, 자신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성장하면 승리한다. 모두가 실패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고난의 한복판에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말한다.
 
오늘 본문의 바울 일행은 폭풍 속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비가 내려 추위에 직면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멜리데 사람들이 이들을 보고 도왔다. '특별한 동정으로' 해안에 불을 피워 놓고 영접한다. 멜리데 사람들은 276명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보여준 용기, 믿음, 존중,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바울이 독사에 물렸다. 독사가 바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멜리데 섬사람들이 말한다. "이 사람은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신이 공의로우시다. 독사로 저를 벌하신다."
 
바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흔들어 독사를 떨어뜨린다. 몸이 붓거나, 죽어야 하는데 바울이 멀쩡하자 멜리데 사람들이 말을 바꾼다. "바울은 신이다." 바울은 큰 일 뿐 아니라 큰 일 뒤에 이어오는 작은 일에서도 승리했다. 큰 승리 뒤에는 작은 고난이 이어서 온다. 큰 승리가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선 뒤따라오는 작은 고난에서 승리해야 한다. 큰 승리 뒤, '작은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승리를 이어주는 고리와 같다. 바울의 일행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로마로 갈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독사에 물린 작은 사건에서 승리함으로 로마로 갈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 멜리데 사람들이 배, 식량을 주고 환송한다. 둘째, 작은 고난은 큰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만일 독사에 물리지 않았다면 누가 먹을 것과 배를 구했을까? 그 주역은 바울이 아닌 군인이나 선원이었을 것이다. 큰 승리 뒤에 온 작은 고난 때문에 바울은 여전히 리더였다. 셋째, 큰 승리를 더욱 확고히 해준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은 276명을 바울에게 주었다. 이들은 목숨이 경각에 붙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갔다. 바울이 독사에 물리고도 아무 일이 없자 이들은 '과연 바울의 하나님은 이 섬에서도 살아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공 속에만이 아니라 실패에도 최고의 기회가 숨어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실패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국 목사
수원온누리비전교회

토-비전의 사람
본문 : 수 1:1~11
찬송 : 347장


이번 2016 하계올림픽은 38개 분야의 총 28개 경기 종목, 306개의 세부 종목의 경기가 열렸다. 리우올림픽에는 역대 최다인 206개국, 1만 5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며 총 28종목, 금메달 306개를 놓고 치열한 승부가 전개된다.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은 비전의 사람들이다. 비전의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성경에는 비전의 사람으로 여호수아가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었다고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 말씀에 '너희가 밟는 땅'이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에는 일곱 족속이 기다리고 있다. 이 일곱족속과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비전의 특징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라고 하신다. 때로는 생명이 위험한 경우도 있다. 말씀을 받고 움직이고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호수아에게 오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 발바닥으로 그 땅을 밟으라." 다시 말하면 희생, 헌신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4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가라고 한 광야의 특징이다. 척박한 땅이다. 대해는 망망해이다. 말씀을 따라가면 멋진 정원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말씀을 붙들고 가는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그래서 성경은 광야, 망망대해라고 말한다.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3일 안에 요단을 건너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갔는데 요단이다. 광야이다. 뙤약볕에 뜨거운 날씨와 전쟁터이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말한 명령이 이루어지기 위해 너는 그 땅을 밟아야 한다. 비전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도 약속하신 땅을 밝으라 하셔서 말씀대로 순종해서 그는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대가를 치러 영적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비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희생, 헌신의 땀을 흘리는 대가를 넉넉히 지불하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형미 목사
예수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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