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조건 만나야 한다

[ NGO칼럼 ]

김주윤 목사
2016년 08월 16일(화) 15:40

2005년 5월 2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개성공단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북한 땅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예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앞으로 이곳에서 해야 할 사역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 했다. 모든 것이 낯 설은 이유도 있지만 혹시 목사라는 정체가 드러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제일 큰 이유였다.

사실 목사라는 신분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의료봉사 단체인 그린닥터스가 세운 개성병원에 행정 부원장이라는 직분으로 개성공단에 들어갔다. 직함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잡역부의 역할을 했다.

병원 청소하는 청소부였고 환자 접수하는 원무과 직원이었으며 엑스레이 기사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개성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남한으로 후송하는 응급차를 운전하는 기사이기도 하였다.

새벽 두시에 북한 군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응급차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는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분단의 현실과 아픔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병원에서 몸으로 섬기면서 목회할 때와는 전혀 다른 보람과 기쁨을 체험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의 생활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남한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 중에서도 북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최고의 경험이다. 체제가 다른 현장에서 오랜 동안 떨어져 살았고 그 동안 형성된 나름대로의 선입견이 있기에 서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번은 북한 참사들과 식사를 할 때 갑자기 질문을 했다.

"선생, 남한에서 우리에 대해 어떻게 배웠습니까? 머리에 뿔 달렸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기 온다니까 가족들이 걱정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만져 보십시오. 뿔이 있나? 왜 그럽니까? 같은 민족끼리." 너무나 충격적인 말에 한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학생 시절 반공포스터에 보았던 북한에서 내려오는 흉악한 모습의 늑대가 떠올라 놀랐다. 초기에 남한 주재원들이 타고 간 얼마 안 되는 차들을 보면서 북한근로자들은 "우리에게 시위하려고 남한에 있는 차를 다 몰고 왔습니까?"라고 말했다.

얼마 후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으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한다. "선생님, 한 민족끼리 왜 이렇게 다릅니까? 나는 자전거도 없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계속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남이 중요하다. 무조건 만나야 한다. 만나서 같이 살다 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막힌 담이 허물어 질 것이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얕은 곳에 모래로 댐을 쌓는 놀이를 했다. 열심히 땀 흘려 모래 댐을 쌓아보지만 얼마 후 불어나는 물 때문에 약한 곳이 허물어진다. 급히 다시 막는다. 그러나 다른 곳이 무너진다. 또 막아 보지만 수압에 못 이겨 결국 다 무너지고 만다. 남북 분단의 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한 때 동쪽으로는 금강산이 뚫렸고 서쪽으로는 개성공단이 뚫렸었다. 빈번하게 오가다 보면 머지않아 남북 분단의 장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이전 보다 더 견고한 댐으로 막혀 있다. 안타깝고 슬프다. 용서와 화해의 짙은 구름이 몰려오고 대화와 평화를 염원하는 빗줄기가 거세짐으로 점점 통일의 수위와 수압이 높아져 남북분단의 댐이 속히 무너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북한전문가
개성공단 11년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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