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이 아름답다

[ 논단 ] 주간논단

김운성 목사
2016년 08월 09일(화) 16:07

김운성 목사
땅끝교회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이 좋아졌다. 고속도로가 개통됐을 뿐 아니라, 대관령 부근에는 수많은 터널로 연결된 새 도로로 인해 정말 빠르게 동해 바다를 볼 수 있게 됐다. 이제 사람들은 새 도로와 터널을 통과해 쏜살 같이 동해로 달리고 있다.

그런데 아는가? 새 것이 많이 등장할수록 옛 것에 대한 향수가 깊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한 쪽으로는 빠르게 가는 길이 열리고 있는 반면 우리네 조상들이 대관령을 넘던 옛 길도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아마도 신사임당이 율곡 선생의 손을 잡고 넘었을 그 옛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겨울엔 순백의 이불 같은 눈 덮인 길이요, 봄엔 꽃이 지천인 길이요, 여름엔 수목이 하늘을 가려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듯한 길이요, 가을엔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단풍길이다. 정취가 깊은 그 옛 길은 풍광도 풍광이려니와, 옛 것이 주는 아스라함이 있어서 더욱 좋다.

새로운 발명품들이 무서운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옛 것에 대한 향수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옛 것은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 중엔 정말 소중한 것들이 많다. 필자는 옛것이란 곧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이 소중히 여기던 옛 가치들 중 으뜸은 효도였다. 효도는 백 가지 행동의 기본 도리였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사람이 형제와 불화할 리 없을 것이며, 효를 가슴에 품은 사람이 소아병적인 인간이 되거나, 망나니 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도 옛 것을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살펴보면 교회 안에도 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 참 많다. 따라 부르기도 힘든 노래들, 성경 구절과 가사를 보여주는 영상시스템, 드럼과 기타 악기들, 다양한 이름의 제자 훈련 프로그램들, 카페, ○○국, ○○팀 등으로 표현되는 세련된 조직들, 원색의 유니폼을 입고 교우들을 맞이하는 안내 담당자들… 이 모두가 전에는 없던 것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새로운 것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새로워지기는 점점 더 어렵고, 부흥도 어려워졌다. 우리가 부흥운동의 모델처럼 여기는 1907년 평양 대부흥 때에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몇 가지 본질적인 것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 본질적인 것들이란 뜨거운 예배, 밤새도록 부르짖는 기도, 가슴을 치는 회개, 교인이라고 하면 하룻밤 재우고 식사 몇 끼는 당연히 대접하던 신뢰와 교제였다. 이런 것들은 그 때 새로 등장한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2000여 년 전인 초대교회 시대부터 있었던 가장 본질적인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케케묵은 구식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교인을 참 교인되게 했다. 선배들은 그것들을 굳게 붙잡았고, 그 결과 교회는 부흥됐다. 평양 대부흥은 무슨 새로운 것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 시대부터 내려오던 본질적인 것에 충실했을 때 일어났다.

요즘 우리는 새 것만 좋아하고 옛것은 무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밤을 새우는 기도가 사라지고, 입술만의 회개로 끝을 맺고, 참 사랑을 잃고 있다. 새로운 것들로 안 된다면, 옛것을 다시 시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가 옛것이란 이름의 본질을 회복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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