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과 회복

[ 논설위원 칼럼 ]

정성진 목사
2016년 07월 26일(화) 15:24

'레일웨이 맨 The Railway Man, 1955'이라는 책을 쓴 에릭 로맥스의 이야기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았다. 특히 잔인한 '물고문'은 그의 정신과 영혼까지도 파괴했다.

그는 결코 그 고문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용서할 바에는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 버리는게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변화의 시작은 '고문피해자보호의료재단'과 만남부터였다. 의료재단 직원들은 로맥스라는 한 피해자가 겪은 육체적 고통에 대해, 나아가 그 고통이 마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로맥스는 '경청' 속에 녹아든 함께 함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만날 용기를 얻었다.

"생전 처음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왜 이리 완고하고 수동적이고 조용한 적의를 품고 사는 이상한 사람이 돼 버렸나…. 그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영국 아일랜드 성공회 사제인 스티븐 체리는 '용서라는 고통'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용서의 시작은 경청'이라고 말했다.

한자어 경청(傾聽)을 풀어보면, '몸과 마음을 기울여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처럼 듣고, 열 개의 눈으로 관찰하며 한 마음으로 몰입해 들으라는 것'이다.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풀어진다.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사드 배치로 인해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국방부에서 사드의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실증해줬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나라의 말을 믿지 않는, 아니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군주 또는 지도자의 거짓말로 목숨을 잃어왔던가. 도읍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임금부터 근대의 지도자들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럴수록 지도자들은 책임을 가지고 경청해야 한다. 주민들의 이야기가 비합리적이며 감정적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우리나라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줘야 한다. 그 노력을 포기하고 행정력으로 사태를 처리한다면 문제가 더욱 꼬일 뿐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롬10:17)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거만한 권력은 백성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 말만 믿기를 강요한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이런 우를 범치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회도 세상사에 지친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심방(尋訪)의 '찾을 심(尋)'자는 좌(左)와 우(右)와 촌(寸)의 합자(合字)다. 좌우로 손을 벌려 한 발을 내딛는 형상이다. 목회자는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모든 성도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가운데 서서 좌의 사람과 우의 사람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가야 한다.

모두가 자기 소리를 내려고 하는 시대다. 위정자는 위정자대로 할 말이 많고, 백성들은 백성대로 한(恨)많은 소리를 낸다. 교회도 목사는 목사대로 힘들다고 말을 하고, 성도는 성도대로 괴로움을 토로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따로 없다.

자기소리가 호(呼)라면 경청은 흡(吸)이다. 모두가 호(呼)만 하면 어찌 생명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모든 지도자는 괴로워도 흡(吸)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주님께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하지 않는다(마15:11)'라고 하셨다.

교인들이 호(呼)할 때 목사가 흡(吸)해 준다면, 백성들이 호(呼)할 때 지도자가 흡(吸)해 준다면 교회든 나라든 건강하게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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