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25~3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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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21일(목) 10:19

월-감사의 향기
본문 : 단 6:10
찬송 : 429장

모든 생물은 저마다의 특이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듯 삶에서 나는 냄새도 다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의 향기가 나야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피가 흐르고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무엇인가? '순종' '전도'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악취를 내는 사람은 불평하고 원망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은 한 마디로 악취였다.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원망과 불평은 자신을 죽이고 타인에게 악취를 풍긴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때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삶을 무너지게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간다. 삶의 자리에서 감사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죄를 사하고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 그래서 감사를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그렇게 살았다. 자신을 죽이려는 법령이 만들어졌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위기가 몰려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지만 그는 감사를 터뜨렸다. 하나님은 다니엘보다 먼저 사자굴에 가셔서 사자 입을 막고 모든 악한 것을 멸하셨다. 여호사밧 왕도 전쟁의 위험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기도하며 감사를 고백했다. 그는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찬송했고 감사를 터뜨렸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문제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문제 상황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감사를 터트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터뜨려 주신다.
 
백합은 향이 진한 꽃이다. 그런데 잎이 찢어질수록 더 진한 향기를 발한다. 살아가다가 위기를 맞아 한쪽이 찢어져 피가 날 때 백합처럼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를 바란다. 그 향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간다. 여러분의 삶에 위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윗은 사울의 핍박속에서 고난 속에서 사랑의 꽃을 피웠다. 때론 찢기고, 상하고, 미친 척까지 해야 할 상황을 맞이했지만 더 큰 사랑으로 찬송으로 살았다. 그는 광야에서 찬송을, 감사를 터뜨린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시편의 고백을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서, 절망의 순간에서도 감사를 찬송을 터뜨려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후손들이 그 고백을 먹고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감사는 결단이고 삶은 감사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감사가 되게 하시고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영복 목사
광안교회

화-배신당한 날에 부른 노래(II)
본문 : 시 4:1~3
찬송 : 382장 


시편 3편과 4편은 같은 배경에서 쓰여진 시이다. 이 시편들은 압살롬의 반역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아들이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반역을 일으켰다. 다윗은 아들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친다. 잠자리에 누우면 패배감, 분노, 원통함 등이 다윗의 마음을 폭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안고 해결의 열쇠를 가지신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첫째, 하나님은 도움을 청할 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대한 분노, 친구 아히도벨의 배신, 자신의 죄악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하는 죄책감 등이 다윗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시선은 하나님 아버지께 맞춰졌다. 그는 부르짖는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우리에게는 나의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우리의 죄악까지도 들어주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절한 응답까지도 해 주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다.
 
둘째,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나의 옳음을 변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다윗은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았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다윗의 고난은 그의 범죄함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긍휼과 자비로 품어 주셨다. 그리고 그를 옳다고 변호해 주셨다. 하나님은 자녀의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감추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분이다.
 
셋째,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다윗이 자신을 조롱하는 인간들을 향해 '너희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허사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다윗은 '나는 비록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이 허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을 다윗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수고로 보는 것이다. 다윗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라고 찬양하자.
 
오늘의 기도
 
인생의 어둠을 만날 때 손 내밀어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영민 목사
곤지암교회

수-이해할 수 없는 사건
본문 : 막 11:12~25
찬송 : 310장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의 모습 중에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첫째,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는 철도 아닌데 왜 이 나무를 저주하셨는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특별한 나무이다. 무화과열매는 정탐꾼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들고 온 열매 중에 하나였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믿었다. 다윗 이후 그들은 언제나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다. 포로상황에서도 그들은 기도할 때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다.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과 백성들은 유월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찾아왔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백성들의 기대와 달리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장소로 변해 있었다. 예물을 준비한 백성들은 넘쳐났고,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는 소리는 이곳저곳에서 들렸지만 성전은 물건을 매매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어서 찾아오는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장소였다. 예수님은 단순히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르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죄와 어둠에 갇혀 고통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십자가를 지심으로 생명을 주려고, 부활하심으로 소망을 주기 위해서 오르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고난이었지만 그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이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이유는 제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한국교회가 분열과 다툼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넘쳐나고 있다. 교회는 찾아오는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전하는 곳이고 주님을 통해 소망을 얻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음 날 아침에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에 대해 신기한 듯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주님께서 이어서 바로 제자들에게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그대로 믿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내 이성으로 보면 분명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할 일은 단하나, 바로 기도이다. 삶 속에서 우리의 시각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승리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성운 목사
동촌제일교회

목-미혹의 영을 분별하라
본문 : 계 7:2~12
찬송 : 38장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성육신'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 예수님이 말씀 자체이시다. 또한 기록된 말씀인 성경 66권과 선포된 말씀인 설교도 매우 중요하다. 이 말씀은 곧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선포되었기에 말씀의 해석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말씀과 성령의 길을 따라 바른 길, 의의 길로 가야 한다.
 
'안상홍 증인회'는 안상홍 씨가 죽고 나서 장길자 씨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신천지 이단에서는 후계구도를 만들어가면서 김남희 씨를 '만민의 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이단들은 성경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인침을 받은 사람이 12지파에 1만 2000명씩 14만 4000명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인은 도장이다. 신천지는 비유풀이를 통해서 나무는 사람이라는 도식을 이용한다. 그 도장은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도장은 나무로만 만들지 않는다. 뼈도장도 있다. 그런데 신천지는 도장은 나무로 만들었고 나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학개서의 스룹바벨을 택하여 그 당시의 도장으로 삼았다고 근거를 제시한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온다는 것은 구름에서 비가 온다는 것을 말하면서 곧 비는 말씀이라고 가르친다. 스룹바벨 당시에는 스룹바벨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사도요한 당시에는 사도요한을 통해서 인치는 일을 했고, 요즘에는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 씨의 말을 들어서 인침을 받아야 하고, 시온산인 경기도 과천에 있는 장막성전으로 가야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가르친다. 정통 교회에는 12지파가 없기 때문에 가짜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은 구약의 12지파가 아닌 12제자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경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하나님의 역사를 '성도가 세례받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인치신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확실하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치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도미시안 황제 때 박해를 받으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표로 인치시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하고 함께하신다는 선언이다. 모든 이단은 교주를 구원자로 만들기 위해 시대별 구원자를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은 시대별 구원자가 아닌 오직 인류의 구원자는 언제나 예수님이며, 그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가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는 유일한 길임을 말한다.
 
오늘의 기도
 
미혹의 영을 분별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읽고 십자가 보혈의 복음을 붙들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선 목사
주향교회

금-너는 나를 따르라
본문 : 마 8:18~22
찬송 : 440장

예수님께서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신다. 첫째 사람은 서기관이라고 하는데 성경지식이 많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인간적 정리 앞에 괴로워하고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부르시는데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라고 말한다. 주저하는 이 사람을 혹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며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우리와 다르다. 주저하고 자기 일에 얽매인 두 번째 사람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다.
 
첫째,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려고 없는 자를 부르신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셨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는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권세 있는 말씀이었다. 인기 절정에 있는 예수님에게 서기관이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지도층 인사, 돈 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으셨다. 어부들과 세리와 창녀들, 귀신 들린 자,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부르셨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때는 평범한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사시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신다.
 
둘째,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부르신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옵소서"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서 영적 생명이 있다고 보셨다. 인간적인 관계성에 흔들리고 있는 제자였지만 그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보셨다.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온다. 예배의 자리에 나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셋째,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겠다고 부르신다. 본문에서는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다. 부름 받은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 복음 안에서 헌신해야 한다. 하늘나라를 이 땅에 심어야 한다. 전국여교역자 안식관에는 평생 주님을 섬겼던 여교역자들이 살고 있다. 자신의 삶과 물질을 복음을 위해 드렸던 사람들, 중보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의 종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세상과 나누려 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믿음의 어머니들이다.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인생을 책임져 주시려고 수십 년 전에 "너는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셨다. 예수님만이 소망이심을 믿고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진다.
 
오늘의 기도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님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혜 목사
복지교회

토-인생 최고의 네비게이션
본문 : 수 6:22~27
찬송 : 521장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점령한 성읍이 여리고이다. 여리고는 가나안의 진입에 부담스러운 성읍이었다. 본문은 정탐꾼들을 숨겨준 기생 라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라합은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라합은 상식적으로 보면 두 정탐꾼을 숨겨주면 안됐다. 신고해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가시적인 것에 유혹받지 않았다. 그 이유를 두 정탐꾼들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흔치 않았고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라합은 하나님을 위대하신 분, 두려우신 분, 승리의 하나님으로 확실히 믿고 고백한 것이다. 말씀의 언약 속에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의 로드맵을 찾았다. 라합은 말씀대로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집에 모으고 네 집 문을 나가서는 안된다는 사항을 따랐다.
 
출애굽 사건에서도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하셨다. 노아시대에 홍수심판으로 멸망할 때에도 노아 방주 안에 있던 가족은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예수님, 신앙,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말씀이다. 라합의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자격 심사도 없다. 입장권도 없다. 경력 증명서도 없다. 라합의 말을 믿고 모여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다.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마음의 창에 붉은 줄을 매고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피 흘림의 십자가의 줄이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가나안 땅에 이방인 한 여인이 구원 받은 은총의 길을 갈파하였다. 영적으로 영생의 길을 알고 있는가?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며 로드맵을 선포한다. 인생의 최고의 네비게이션은 성경속에 있는 생명의 로드맵이다.
 
오늘의 기도  
 
세상에 사는 동안 죄의 유혹에 치우치지 않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성현 목사
봉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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