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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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14일(목) 13:05

월-매일 감사하며 살자
본문 : 대상 23:25~32
찬송 : 79장

본문 30절에 보면,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하라"고 하였다.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라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자꾸 연습해야 한다. 나에게 웃어만 줘도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예배를 통해서 감사훈련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베푸신 가장 큰 축복 중에 교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서, 성전을 통해서 예배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그 예배의 본질 속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도는 구원받았고 은혜받았고 축복을 받았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면서 교회를 남겨놓으셨다는 것 또한 큰 은혜이다. 바로 이 교회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성찬식이 있다. 교회는 은혜의 통로가 되는 성찬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감사하면서 이 성찬을 받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는 왕이 되어서 처음으로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왔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당대에는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였지만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크게 축복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감사하고 찬송하고 예배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려 했고 성가대도 만들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한 것이다. 다윗의 엄청난 축복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 훈련하기를 원하신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광야 40년 동안 이동하면서 감사 훈련하기를 원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이것은 아침마다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면서 모든 삶에서 감사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감사가 훈련되어서 언제나 감사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고 IS가 저지르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사람이 타락하고 사단에게 사로잡히면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날마다 성도들이 앞장서서 원망과 증오를 물리치고 감사와 찬양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 귀하다.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하며 선교하며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성도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감사하고 찬양하면 이런 증오와 원망를 만들어내는 사단의 역사는 떠나가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진심으로 예배함으로 원망과 증오의 세상을 바꾸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선 목사
주향교회

화-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본문 : 마 26:31~46
찬송 : 488장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모습이다.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치 십자가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신다. 한편 31~35절까지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할 때 제자들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확신에 차서 말해야 하고 제자들이 두려워해야 하는데 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었을까?
 
첫째,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마친 뒤 다음 날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가버린다. 나약하게 기도하신 것과 달리 주님께선 십자가를 담대하게 맞으신다. 인간은 고난이 닥치기 전에는 마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두려운 일들이 막상 일어나면 쉽게 넘어진다.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믿음으로 담대하게 현실을 마주한다.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둘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였다. 사실 모든 인간은 어려움, 고통이 오면 피하고 싶어한다. 주님은 다시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이 기도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마시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 앞에 당면한 그 잔을 마시지 않으면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마셔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실 때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주님이 주신 이 세상의 잔을 마실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인간은 고통 가운데 살다가 고통으로 끝난다. 그러나 주님이 마신 고난의 잔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자신이 마신 잔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부활이 없었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무의미하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사는 자들이다. 이미 우리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다. 이제 우린 이 땅에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난의 길을 걷는다면 반드시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성운 목사
동촌제일교회

수-인생 후반전
본문 : 창 47:4~12
찬송 : 428장

인생 후반전은 축구처럼 경기의 딱 절반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질병으로 인생이 망가졌다가 회복했을 때, 어떤 이는 은퇴를 새로운 삶의 기회로 삼으면서, 어떤 사람은 심한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자로 재기하면서 인생의 후반전을 맞는다. 야곱은 147세를 살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후반전으로 갈수록 빛나는 삶이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첫째, 인생 후반전은 인생의 위기에서 시작된다. 축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겁 없이 달려온 야곱은 위기를 맞았다. 세상 기준으로 야곱은 성공했다. 고향을 떠난지 20년 만에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외삼촌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야곱의 앞에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보내어 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뒤에는 분노하는 외삼촌과 그의 아들들이 있다.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나의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둘째, 인생 후반전은 주님이 함께 해주셔야 한다. 야곱은 홀로 강가에 앉았다.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평안한 날이 없었다. 끊임없이 투쟁하고 열심을 다해 달려왔다. 그러나 그것이 평화를 주지 않았다.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고, 에서에게 흘러 들어갈 축복의 물줄기를 자기에게로 돌려서 축복권을 쟁취했다. 야곱은 축복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홀로 앉아 밤새워 기도했다. 주님이 야곱을 찾아오셔서 씨름해 주셨다. 우리의 위기는 주님의 절대적인 개입과 도우심이 필요하다. 주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것이다.
 
셋째, 인생 후반전은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이었다. 그런 야곱의 인생 전반전에서는 야곱이 승리할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손해를 입고 상처를 입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인간의 열심과 욕심, 세상의 축복을 다 내려놓았다. 이제 하나님과 인생 후반전을 뛰고 있다. 첫째,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야곱은 130세에 세계 최대 제국의 왕인 바로를 축복하는 축복자가 되었다. 축복을 쟁취하려던 사람이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다. 둘째, 야곱의 인생 후반전은 거룩한 가문과 거룩한 민족을 세우는 일이었다.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거룩한 가문의 예언적 축복을 했다. 그 축복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으며, 그 축복으로 이스라엘의 가문을 통해 세상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이다. 인생 후반전은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인생의 후반전을 더욱 아름답고 성숙되고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혜 목사
복지교회

목-내 집이 교회되게 하라
본문 : 고전 16:15~20
찬송 : 208장 


예수님은 종교를 만들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의 부흥이 교회의 목표가 될 수 없고, 교회의 부흥이 교회와 목회자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도 안된다. 넒은 의미의 교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장차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영원한 교회라고 한다.
 
오늘날의 지상교회가 있기까지는 그의 배경과 과정이 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유목생활이기에 머문 곳에서 제사 곧 예배를 드렸다. 지금은 각 나라 마다 그 지역에 따라 교회당이 있다. 교회는 선교(전도)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 섬기고 나누는 일을 해야 한다.
 
초대 교회와 바울 사도 역시 가는 곳 마다 교회를 세웠다. 그 중의 하나가 고린도교회로서 주후 50년경에 세운 교회이다. 바울이 개척할 때부터 협력하고 동역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가로 그의 집이 고린도교회이다. 초대교회가 주로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가정이 교회가 되고 또한 교회가 가정 같은 속성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와 가정, 신앙과 삶의 현장이 양분이 되어 있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와 기쁨이 가정에서도 충만했으면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누구에게도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한다.
 
본문에 스데바나의 집은 바울이 아가야 지방에서 전도하여 얻은 첫 결신자이다. 그의 가족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스데바나가 바울 사도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는 섬기는 사람이었다. 섬기려면 자기가 낮아져야 한다. 내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 내가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려면 나를 낮추고 종이 되어야 한다. 나의 시간, 물질, 재능, 힘을 주인을 위해 써야한다.
 
둘째, 그는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지켜주고, 보완하여 주고, 채워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폄하하고, 참소하고, 깍아 내리고, 침소봉대하지 않고, 감싸주고 칭찬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셋째, 그는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마음의 위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안위를 주었음을 가리킨다. 주님을 시원케 합시다. 교회를 시원하게, 이웃과 형제를 그리고 가족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스데바나는 이와 같이 섬기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서도 가정에도 직장 어느 곳에서도 예수님의 흔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집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께서 계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내 집이 교회되게 하자.
 
오늘의 기도
 
내 몸이 주님의 전이 되게 하시고 나의 모든 삶이 예수님이 증거되고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성현 목사
봉선교회

금-배신당한 날에 부른 노래
본문 : 시 3:1~4
찬송 : 342장

시편 3편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대적하여 배반하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지어진 시편으로 알려져 있다.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는 배신감일 것이다. 배신당했다는 느낌 속에는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았고 숨어 있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사랑한다.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한 것이다. 이제 그가 나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의 속에서 두 마음이 싸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다윗 자신의 범죄한 한 사건을 자꾸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범한 사건 대해서 하나님은 철저하게 다윗의 집안을 심판하셨다.
 
큰 아들인 암논이 이복동생인 다말을 강간하고, 또 자기 누이가 강간당했다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형을 죽여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킨다. 아마도 다윗은 모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윗은 배신의 아픔을 그대로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고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수군거린다. 다윗은 이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았다. 그의 눈은 그 문제의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첫째, 그는 하나님은 나를 반드시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붙잡았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입니다. 주님이 막아 주십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둘째, 하나님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시다. 지금 다윗은 아들을 피해 도망자의 신세로 처량하게 떠돌고 있다. 이 순간에도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은 사실이 생각났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숨겨 주신다. 우리의 모습이 어떤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머리를 들게 해주시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다. 고통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찾으라는 신호이다. 다윗은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정죄감이 강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향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그래도 너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어려움은 주님을 찾으라고 하는 신호이다. 그분은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참된 하나님의 음성으로 오늘 하루가 감동과 기쁨이 가득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영민 목사
곤지암교회

토-사랑의 끈
본문 : 갈 2:20
찬송 : 220장

얼마 전 초등학생인 딸 예원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대화한 내용이다. "예원이 너 입양되었다며?" "응." "그럼 너 친엄마하고 안 사네?" 딸은 "호적에 올라가면 가족이 되고 친아빠 친엄마가 되는거야. 그리고 난 오빠랑 언니랑 동생이랑 살아. 너희 엄마 아빠는 많이 싸운다고 했지? 우리 엄마 아빠는 한번도 안싸우셔. 우리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러자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입양되고 싶다." 예원이가 자신있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지만, 만져지지 않지만 마음 속에 깊은 믿음과 사랑의 끈으로 가족과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슬프고 아파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예원이는 당당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아이가 입양된 것에 놀림을 받았지만 그 아이는 말했다. "너는 너희 부모가 어쩔 수 없이 널 낳아서 키우는 것이지만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선택한 거야, 나는 특별히 선택받은 아이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특별한 사랑을 받은 존귀한 사람이다.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작가 박정헌 씨가 쓴 '끈'이란 책을 보면 후배와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일어난 조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후배가 크레바스(수백미터 깊이의 함정)에 빠졌지만 살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끈으로 묶었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우리가 세속의 크레바스에 빠져도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라는 구원의 끈이 우리의 삶에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의 끈과 주님에 대한 믿음의 끈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그 끈이 나, 우리, 모두를 살린다. 우리는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의 기도
 
끊어진 세상속에서 누군가를 살리는 사랑의 끈, 믿음의 끈, 섬김의 끈이 되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영복 목사
광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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