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그저 버티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

김용재 목사
2016년 07월 13일(수) 10:55

"아, 정말 이상해요. 교회 아줌마랑 아저씨들이랑 너무 가식적인 거 같아요."

교회 처음 나와서 꽤 적응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어?"라고 묻자 아이가 대답 했다. "나를 처음 봤는데,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우리 부모도 나를 안 좋아하는데. 나랑 살아보면 그런 말 못하실 걸요. 하여튼 나를 잘 모르면서 자꾸 사랑한다, 축복한다 하니까…좀."

그 아이는 교회에 처음 나왔으니까 그런다고 치자. 그럼 교회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어떨까? 달랐으면 좋겠는데, 다는 아니지만 비슷하다.

새 해 첫 주 어색한 만남, 선생님들은 자신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애를 많이 쓴다. "여러분 반가워요. 기도 많이 했는데 참 보고 싶었어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표정, 음성, 축복송, 간식과 편지까지 모든 것을 동원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잘 모르시면서 왜 자꾸 사랑한다고 하시지? 가끔 내 이름도 헷갈리시는 것 같은데…'

진심을 몰라주는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들이 힘이 빠진다. 그래도 버터야 한다. 아이들 중에는 선생님 이외에는 하늘의 메시지를 들려줄 사람을 못 만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봄이 지나갈 즈음에 아이들 생각이 이렇게 바뀐다. '어! 우리 선생님 좀 이상하시네?!'

그렇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다른 어른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부모님도 자신을 조금 못 마땅하게 보시는 거 같고, 학교 선생님도 자신을 좀 못 미더워하시는 거 같고 대체로 어른들이 그러시는데 우리 선생님은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 하시니 이 분 참 이상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변함없이 버티시는 선생님 덕분에 여름 지나갈 즈음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한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나도 나를 포기했는데, 왜 선생님은 나를 포기하지 못하시지?' 자신의 반응에 상관없이 사랑으로 대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아이들은 설교를 조금 더 주의 깊게 경청한다. 소그룹에서 자기 얘기를 조금 더 하게 된다. 그 동안 목회자와 선생님들 통해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통합되기 시작한다.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이 몰라줘도, 세상을 위해, 십자가 위해서 끝까지 버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기 시작한다.

이것은 절대 신비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데리고 하시는 일이다. 한 아이를 사랑해서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는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아이들이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힌트를 얻도록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버티는 사람이다. 은혜는 그저 버티는 거다. 

<다세연 대표ㆍ숲속샘터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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