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선교 지평 넓히는 기회...홍보 아쉬워

[ 선교 ] CWM 참관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7월 05일(화) 11:10

2015년 7월, 세계선교협의회(Council for World Missionㆍ이하 CWM)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2016년 6월에 제주도에서 열리는 CWM 총회의 예배위원으로 수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로서는 CWM 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한국에서는 본 교단만이 유일한 회원이었기에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으로 수락했다.
 
2015넌 8월과 2016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런던을 방문했다. 여성, 남성, 청년, 목회자, 평신도, 예배학자, 음악가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10여 명의 예배위원들이 이번 총회의 주제에 맞춰 개회예배부터 폐회예배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번의 예배와 기도회를 기획하고 텍스트를 만들었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치유: 행동하는 희망(Healing: Hope in Action)'이었는데, 예배와 기도문들을 만들면서 누구보다도 먼저 은혜를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예배위원회의 첫 모임은 불통과 갈등의 시간들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회원교단들이 개혁전통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대한 이해와 선호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제에 맞춰 기도문들을 함께 만들고 읽어보면서, 또 찬양을 선정한 후 함께 불러보면서 예배위원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치유와 화해의 능력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CWM 총회는 거의 일주일 정도 이어졌던 긴 여정 속에서도 아침.저녁의 예배들과 낮의 성경공부와 말씀나눔 등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의장, 회계, 이사들을 뽑는 선거와 각 지역별로 나와 선교상황을 보고하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행사 대부분의 시간은 말씀을 듣고 말씀과 관련된 경험을 나누는 순서들로 가득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들일 수 있었는데, 각국 대표들의 높은 참여율과 적극적인 토론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연합운동을 이끌려고 하는 노력은 개혁전통의 맥을 충실히 이어가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여기서 CWM의 밝은 미래를 전망해본다. 그것은 교회연합과 선교협력의 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WM은 선교의 개념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이해를 넘어선다. 고통 당하는 인류에게 희망과 도움을 주는 광의적 선교에 초점을 두면서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가 선교라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모든 제반 문제들, 즉 사회, 정치, 경제, 인권, 환경 등의 문제들이 한 개인의 영혼구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CWM 선교이해와 목표는 합리적 중도의 모습을 띄는데 여기서 또 한 번 CWM이 향후 건강하고 균형잡힌 선교협의체로 더욱 발전해나갈 것을 확신하게 된다. 본교단은 1990년에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CWM과의 협력을 통해 교회연합운동과 선교의 지평이 더 넓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총회에 참여한 것은 너무도 감사한 기회였지만, 아쉬웠던 점들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번 CWM 제주총회에 대해 알고 있는 목회자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래서 이번에도 교회연합운동은 특정인들에게만 제한된 잔치라는 인상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WCC 총회 때 수많은 오해들을 불러온 제1원인은 홍보 부족이었는데, 이번 CWM 총회 역시 동일한 실책이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총회 전후로 많은 분들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항의성 질문들이었다. CWM에 대한 성격은 물론이고 그곳에 참여한 한국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어떤 과정으로 선별이 되었는가에 관한 것들이었다. 교단의 교회연합운동의 발전을 위해 겸허히 들어야할 목소리들이라 생각한다.
 
이제 본교단도 보다 객관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에큐메니칼 인재들을 개발하여 누구라도 기회균등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단의 목회자들에게 찾아가는 홍보를 통해 교회연합운동의 긍정적 지평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며, 목회자들 모두를 교회연합운동과 세계선교의 협력자들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명실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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