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제인그레이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9일의 여왕

김인주 목사
2016년 06월 30일(목) 10:22

1553년 7월 6일 영국의 어린 국왕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하였다. 그는 왕위계승자로 제인 그레이를 지명하였다. 영국에 첫 여왕이 탄생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에서 영국 첫 여왕은 메리로 꼽힌다. 제인 그레이는 등극한지 9일만에 쫓겨났으니 여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제인은 1537년 레스터셔 주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일자는 전해지지 않으나, 에드워드 6세와 생일이 같다고도 한다. 아버지는 도셋 후작 헨리 그레이, 어머니는 헨리8세의 조카 레이디 프란세스 브랜던이었다.

부모는 사냥과 파티를 즐기는 활발한 성격이었으나, 제인은 학구적이고 내성적이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제인은 대신 공부와 독서에 정열을 쏟았다. 그녀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구사했고, 종교개혁 운동에 영향을 받은 독실한 성공회신자로서 신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성장기에는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가 돌보아 주었다. 나중에 여왕이 되는 엘리자베스도 동년배로 함께 자라났다. 후일 왕비가 사망하자 제인은 상주 노릇하며 진심으로 애도하였다. 에드워드 왕세자와 결혼시키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딸을 왕위에 올리려는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대안이 실력자인 공작 존 더들리의 아들 길포드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성년이 될 때까지 그 부모들이 섭정한다는 계획이었다. 메리에게 왕권을 넘기면 종교개혁이 무산되리라는 염려가 그 명분이었다.

위기 속에 메리가 잠시 피하였지만 민심의 지지를 확인하자, 런던에 당당하게 입성하였다. 제인을 앞세우던 어른들은 모두 도망하였다. 메리는 7월 10일부터 19일까지 9일의 여왕으로 불리운다. 반역죄로 런던 탑에 갇히고 반 년 후에 참수되었다. 열 여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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