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들과 함께 (1)이 시대의 약자는 누구인가

[ 특집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6년 06월 29일(수) 11:56

"너희가 여기 내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주님(임금)이 신판의 날에 의인이 한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의인들에 대해 임금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의인들은 '어느 때'라고 질문을 한다. 의인들은 자신의 한일에 대해 기억 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임금은 마태복음 25장 40절 내용으로 답을 하신다. 
오늘 이 순간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심판의 날에 우리의 지난 날을 보시고 '의인'이라 추켜 세워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된자, 헐벗고, 병든자, 옥에 갇힌자들의 위해 한 행위가 주님을 흡족케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병들고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한다. 범죄 행위는 점점더 늘어나고 흉악한 범위를 넘어 반인륜적으로 가고 있다. 또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된 창조세계는 더이상 인간의 욕망을 보고만 있지 않는 듯하다. 세계 곳곳에서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가고 있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사건 사고는 이제 인간의 기본권 마저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위험 수위가 높아졌다. 

특히 한국교회가 개혁이 대상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현실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점점더 깊은 희망이 없는 수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점점더 약한자가 되어가고 있으며, 경제적인 능력과 권력은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죄로부터 무감각해지고 있다. 최근 일어난 반인륜 범죄의 가해자들이 잘 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그 것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또 풍요속에서 자라온 젊은이들 청소년들은 소유의 개념이 흐려지면서 범죄 행위의 통념까지 무시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는 경제적 논리에 의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고 이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자. 일종의 묻지마 범죄라는 것이 최근 잇따라 발생했다. 그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었으며, 남성에 비해 약한 여성이 표적이 되었다. 

강남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폭행을 가해던 사건 또한 피해자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할머니였다. 교회내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도 여성의 피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교회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나약한 여성이다. 교회내 구성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 여전히 피해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러한 여성의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 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한몫을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결국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인 약자를 우리 사회가 똑바로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교회에서 여성은 정책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에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시대의 또 다른 약자는 꿈을 잃어 버린 청년이다. 3포 시대로 시작된 이들의 현실은 이제 목숨까지도 포기했다는 'N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으며, 더이상 스스로 기댈 곳이 없어 국가 마저도 책임지어 주지 않음을 반영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금수저', '흙수저'를 논하며 스스로 꿈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교회에서도 이들이 설자리가 없어지자 '가나안성도'(기독교인이면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신조어, '가나안'을 뒤에서 읽으면 '안나가'가 된다)가 되어 버렸다.  

최근 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피해자가 자신의 꿈을 위해 묵묵히 주어진 일에 충실했던 청년이었기에 우리 국민들은 더욱더 가슴을 아파했다. 그가 소집했던 소지품에서 나온 컵라면 하나가 이시대 청년들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 또한 우리 시대의 약자이다. 2015년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은 174만 2000여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 5100만명의 3.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출신국가는 중국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의 54.7%이며, 또 이 중국인의 72.8%가 한국계 중국인이다. 즉 국내 거주 외국인의 40%가까이가 우리 동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노동 현장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교회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초기에는 보이다가 최근들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있음을 보게된다. 특히 외국인들에 대한 교회적 관심은 '선교'에 치중하고 있어 그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는 교회의 활동이 미약한 것으로 지적된다. 

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외 그룹은 탈북민(새터민)들이다. 통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은 2015년 6월 현재 2만 8133명이다. 이들이 북한을 떠나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수 없이 많은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거주하면서 또 다시 차별을 받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소개한다. 
전문가들은 이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통일 이후에 세워질 정책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서 생활했던 탈북민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회 차원에서 바꿔 말하면 교회 또한 탈북민에 대한 관심을 갖고 통일 이후 선교 정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기초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계속적인 증가로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갈 탈북민에 대한 교인들의 시각을 바꿔나가기 위한 교회의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본보는 이번 7월 특집의 주제를 '거기 너 있었는가, 그들과 함께'로 잡았다. 계속되는 우리 시대의 아픔의 현장에 한국교회가 있어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함께 울어 주기를 희망하는 마음이다. 그럴 때 한국교회가 주님 앞에서 의인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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