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마틴 니묄/바르멘 선언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김인주 목사
2016년 05월 25일(수) 11:34

1934년 5월 29일에서 31일까지, 독일의 루르 공업지대의 도시 부퍼탈에 신학자들이 모였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권세를 잡았고 개신교를 압박하며 독일식 기독교로 재편하려 애쓰던 상황이었다.

마틴 니묄러(사진ㆍ1892-1984)가 선봉에 서서 목사긴급동맹을 조직하였다. 목회자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지지를 얻었지만, 대부분 교회지도자들을 몸을 사렸고 가입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입자의 30%는 공권력에 굴복하였다. 부퍼탈에서 새로운 신학선언이 작성되었는데 도시의 지구의 이름을 따라 바르멘 선언이라 불리운다.

루터교회는 16세기 후반에 신학논쟁을 극복하고 일치신조(1577)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580년에는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 50주년을 기념하여 신조집을 편찬하였다. 이 신조집은 루터교회에서 성경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1930년에는 하인리히 보른캄의 노력으로 이 신앙고백집이 다시 발간되었다. 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서 이레네 딩엘의 편집으로 최근의 연구를 보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되었다.   

16세기 개혁자들의 사역을 복음의 재발견으로 이해하고, 사도시대에 버금가는 권위를 루터교회는 인정하여왔다. 긴급한 시대적 상황에 새로운 교회의 응답이 필요한가? 이 과제 앞에서 루터교회는 주춤거렸다. 소위원회가 바르멘 선언을 작성하였지만 이를 주도한 신학자는 개혁교회의 칼 바르트(1886-1968)였다. 개혁교회는 바르멘 문서를 신앙고백으로 이해한다.

어려웠던 시절, 권력에 저항하는 일에 앞장섰던 동지가 되었던 바르트와 니묄러가 나눈 농담이 전해진다. "마틴, 넌 신학을 제대로 배운 것 같지 않은데, 어쩌면 그렇게 맞는 소리만 하니?" "칼, 나도 궁금한 게 있지. 넌 그렇게 글을 많이 쓰는데, 왜 틀리는 경우가 없니?"
<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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