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3040세대가 교회에 바라는 점

[ <연중기획> 신앙의 대잇기, 지금부터 시작이다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5월 17일(화) 15:26

지난 4월부터 본보가 연중 기획 '신앙의 대잇기 지금부터 시작이다'을 통해 3040세대에 대해 점검해 봤다. 이들 세대가 처한 현실적인 내용들을 현장 목회자와 전문가 등을 동원해 점검하고 현황을 집중 분석했다. 이번 호에서는 3040세대에 속한 3명의 평신도를 통해 그들이 교회에 바라는 바램을 들어봤다. 이들은 그동안 본보가 분석한 내용의 주인공으로 이들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과 이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교회의 모습을 털어놓았다. <편집자주>

 

 

왕성한 활동 위한 공간과 직책 필요

평범하게 사회생활과 교회 생활을 한 한 가장(교인,직장인)으로서 우리 교회가 40대의 설 자리가 가장 적은 것 같다. 직장에서는 조직의 리더로서 팀원을 대리고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아빠로서 엄마와 같이 가정을 이끄는 리더쉽을 발휘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가장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교회가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사회(직장,가정)와 교회에서 일한 수 있는 기반조성이 다르게 되어 있어서 사회에서는 왕성한 세대가 교회에서는 아웃사이더가 되어가고 있다.

먼저 40대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 다시 말하면 교회가 해야할 부문을 다르게 보고 있는 것 같다. 40대는 민주화의 끝세대(87학번 이후)이고 IMF을 가장 처참하게 경험한 세대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책임들, 군사정권부터 민주화를 외면한 부문과 그 이후 교회의 부를 사회로 환원해야 할 영역들에 대해서 소극적인 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특히 교계 리더들이 대중 사회에서 리더쉽을 인정받은 부분(정치적 편향성, 교회세습, 법정다툼 등)이 아주 드물어서 교회 자체에 대한 존경심이 떨어지고 교회 내부로 들어가기를 꺼려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보수 교회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들이 있어서 40대들을 방관자로 양산하는 기류들이 있어 보인다.

필자가 경험한 교회를 생각해 본다. 일반적인 교회 평가는 긍정적이지만, 보수적인 한국 교회의 잔상이 그대로 드러난 부문들이 조직 운영에 있어서 드러난다. 교회에서의 리더자가 되려면 교회에서 직분(안수집사)이 있어야 한다. 직분과 직책을 동일 선상에 놓고 교회 내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고 있기에 40대가 아직도 흔히 말하는 서리집사(리더가 될 수 없는)로서 조직의 일부분(부서원)으로만 활동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서도 40대 팀장, 50대 임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교회는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가진 40대를 단지 교회 조직내 일원으로 만 대하있다. 집사 안수를 받아야 팀장이 될 수 있고, 부장은 장로가 한다라는 고정화된 룰들로 40대가 교회에서 일 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다. 집사 안수를 받으려면 교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직책, 영역들이 너무 적다. 그러다 보니 40대 안수집사가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

또 안수집사가 팀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서리집사가 팀장을 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이런 사고들이 임명권자나 교회 내 부서장(장로,안수집사)이나 부서원(서리집사)도 그대로 여과없이 받아 들인다는 것이 더 무서운 현상 같다.

이런 이유로 교회에서 40대 리더들이 없으니 40대에 그 리더 아래에서 왕성히 일하는 3040세대도 적어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40대 리더가 많아야 3040세대가 교회에서 왕성히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사회의 기류에 처지지 않고 뒤 쫓아 갈 수 있다.

전국민이 사용하는 다음카카오는 30대 대표이사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30대 CEO를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만 고민해 보면 다 알 수 있다고 본다. 우리교회에서는 직책과 직분을 이원화해서 3040세대들이 일한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해 줘야 한다고 본다.
강 영(고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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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양육으로 고된 영혼
교회, 집처럼 편할 수는 없을까?

교회 청년부에서 믿음으로 소통하며 만나게 된,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반려자. 은혜의 반석 위에 믿음의 가정을 세우리라 부푼 기대를 안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고, 허락하신 귀한 생명을 감사히 품으며 부모가 되었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은 육아를 몸소 체험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고, 단비 같던 주일 예배는 아이의 울음에 묻혀 제대로 드릴 수가 없었다. 회사에 복직하고 난 후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혼자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는 몫은 신랑에게 부담으로 다가 왔다. 신랑은 주일이 되면 구역 예배는 커녕, 모자실에서 중계 영상으로 말씀을 듣고 그마저도 아이들이 칭얼거리거나 우는 것을 달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저 교회에 갔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나는 업무를 마치고 저녁예배가 있는 교회를 찾아 돌아다니며 지친 하루를 잠시나마 위안 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회에서도 나는 위로 받을 수 없었다. 그저 주일성수를 위한 책임감 정도에 머물러야 했다. 교회에 있어도 평안이 없었다.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 교회에 오면 집에 가고 싶고 집에 있으면 교회에 가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컸다. 돌봄을 받고 싶었지만 어디에 말 할 곳도 없었다.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다.

회사에 휴직계를 냈을 때 비로소 주일성수를 제대로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서 유치부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 지금, 우리 부부가 다시 본당에서 온전히 말씀에 집중 할 수 있었을 때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영적으로 많이 메말라 있던 그 시기에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내게 요구하는 봉사와 헌신보다 말씀과 교회생활에 집중 할 수 있도록 손 내밀어주는 도움과 배려였다. 교회에 있어 나는 손님일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 외로웠다. 이제 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면 나의 영적 목마름은 또 어떻게 될까. 다시 교회가 어려워질까 염려된다.

나와 같은 직장엄마들에게는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유아부부터 시작해서 근엄하고 보수적이기보다 아이들을 위한 각종 행사와 열려있는 교회 문화에서 자연스레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 할 수 있다. 세상적으로 많이 고된 직장인들과 양육에 지친 부모를 위해 마련된 소모임을 통해 항상 주님께서 우리를 케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도록 깨워주는 것도 필요하다. 고통 받고 있는 3040 세대들을 감싸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교회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안상희(무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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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없는 대화로 '벽'을 없앴으면

우리교회는 행복한 교회다. 나는 행복한 성도다. 남녀노소 불문, 우리 자녀들까지도 행복하다.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땀 흘리며 봉사한다. 그리고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성도들이 있겠느냐만은 아주 가끔은 교회는 내게 상처의 주체가 될 때가 있다. 이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그 불행은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자연스레 전달되기도 한다.

모든 성도, 그리고 다음세대 자녀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교회는 먼저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 그리고 중직자부터 다음세대인 어린이 한명 까지 소중히 여기며, 외침에 귀 기울이는 순수한 교회가 되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이제는 교회 안에도 보이지 않는 벽, 울타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트렌드로 이야기하자면 교회 내 '금수저'와 '흙수저'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다. 때론 나이가 너무 어려서 또 새신자여서, 그리고 재산이 너무 적어 가난하기 때문에 겪는 고충이 신앙 생활 중 행복을 단절하는 부담감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를 먼저 이룬 기존 60대 이상의 구성원들과 화합하기란 더욱 어렵다.

교회의 대형화로 허물없는 대화가 불가능해지면서 30~40대, 특별히 유아기 자녀를 둔 나 같은 부모세대는 갈 수록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점점 교회가 고령화되고, 젊은 세대가 외로워하며 교회를 떠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부모의 고립이 우리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질까봐 근심은 더해 진다. 이같은 문제는 신앙생활 중 넘어야 할 산, 아니면 넘지 못할 큰 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돼 신앙생활의 지속성까지 고민하게 한다.

이제 교회는 수동적인 거룩한 부담감 대신 모든 성도가 장벽 없이 출입하고, 교회의 거룩함을 성도들의 마음속에 능동적으로 간직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확장하면 좋겠다.

때론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장애인, 노숙인, 고아와 과부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아픔과 상황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따뜻하고 푸근해 지길 바란다.

교회가 이제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만 존재하려 하지 않고, 그 건물을 지켜내려는 기존 구성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며 작은자, 우리의 이웃,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생동하고 역사하는 따뜻한 현장이 되길 바란다.
박 현(행복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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