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

[ 목양칼럼 ]

박상기 목사
2016년 05월 10일(화) 16:02

어머니가 자꾸만 아프시다. 작년에 한 고비를 넘기셨는데 그 후로 계속 기력이 떨어지고 휘청거리신다. 최근에는 불면증으로 마음까지 약해지셔서 서글픔이 북받치시는지 자꾸만 우신다.

아무리 힘들어도 몇 번씩 전철을 갈아타고 오시던 교회도 지난 주에는 못 오시고 근처 교회에 가셔야 할 만큼 체력도 떨어지셨다. 분주한 목회 일을 접어두고 서둘러 어머니께 달려갔다. 나를 보시더니 "목사님 보고 싶었어요"라며 눈물부터 흘리신다. 심신이 많이 약해지신 탓에 약간의 우울증이 찾아 온 것 같았다.

자식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어머니는 내게 든든한 영적 버팀목이시다. 어릴적 부터 내 눈에 비친 어머니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을 만큼 단단한 분이셨다. 의지가 강하고 웬만해서는 앓아눕는 법도 없으셨다. 아무리 궁해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좋아도 크게 좋아하는 법도 없고 싫어도 표내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약해지신다. 우울증까지 겪고 계신 모습을 보니 속만 상한다.

방으로 들어가 우리 부부는 늘 하던 대로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훌륭한 주의 종이 되세요"라며 눈물로 축복해 주셨다. 한참을 앉아서 어머니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주로 옛날 고생하며 힘들었던 얘기들이다. 유구한 세월 속에서 묻혔을 법도 한데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찬송을 함께 했다. 그리고 어머니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자 한결 밝아진 모습에 안도가 되었다.

입맛이 없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좋은 식당으로 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생각이 없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오히려 집에서 밥 먹고 가라며 편찮은 몸으로 주방에서 밥을 지으셨다. 아침에 끓여 놓은 청국장으로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을 받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이 밥상이 어머니께 받는 마지막 밥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흘러 제대로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단촐한 찬이었지만 청국장에 밥을 비벼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 청국장 맛은 그대로였다.

문풍지 떨거지 하던 엄동설한에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다녀오시면 바로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까만 가마솥에 푸근한 보리밥을 하셨다. 네모반듯한 상에 고봉으로 밥을 푸시고 장독대에서 엉기성기 담아 놓은 살얼음 낀 김장 김치 한 양푼에 된장 한 투가리를 끓여 허리가 휘게 방으로 들고 오신다.

이부자리는 저만치 웃묵에 밀어놓고 눈꼽도 안 뗀 우리 육남매는 상에 둘러 앉아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칼도 대지 않은 김치가 너무 커서 먹기 곤란하면 어머니는 손으로 쭉쭉 찢어 앞니로 당신이 반 끊어 드시고 반은 우리 밥 숱 가락에 얹어 주셨다. 참 맛있는 밥상이었다. 당신 앞에서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아마도 그 시절을 떠올리고 계시는 것 같았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도, 입에 맞는 음식이 있어도 씹을 수가 없어 못 드시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밥 한 술 드시는 것이 마치 쓴 약을 드시듯 물에 적셔 한 입 물고 물 한 모금으로 겨우 넘기신다. 어머니의 인생이 너무도 허무하고 가련해 보인다. 이제 돈을 드려도 자신을 위해 쓸 줄도 모르고 세상에는 아무런 낙이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숨질 때까지 오직 자식 생각에 마음 졸이며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숭고한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리를 보내면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을 들어주실 때까지는 살게 하실 것이니 염려 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
세상에 그 어떤 말로도 형용 할 수 없을 만큼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를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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