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목사와 투표권

[ 논단 ]

손영호 목사
2016년 05월 03일(화) 14:47

손영호 목사
광주양림교회 원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시인 헤르만 헤세는 "인생의 각 단계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라며, "노년은 노년답게 노년을 체험하라"고 말했다. 젊음만이 아니라 노년도 소중하고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 문화로 인해 노년 세대가 많은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은퇴한 목회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은퇴 목회자들은 목회를 마치고 노년기까지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깊이 감사하며, 노년의 시기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의미 있게 살지를 생각해야 한다. 대접 받거나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을 나타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교회와 사회의 일원으로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고 보람된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노회나 총회에는 은퇴자들의 모임이 있다. 총회 연금재단 사태의 경우에도 은퇴목사들이 상당한 긍정적 역할을 한 줄 안다. 그러나 노인들이 제 밥그릇 지키려고 얼굴을 굳히고 나서야 목사들의 밥그릇이 지켜진다면 우리의 현실이 너무 서글프지 않는가? 필자는 은퇴목사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은 좋으나 자신을 위해 압력을 가하는 단체나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요즘 '은퇴목사는 언권 회원이 된다'는 헌법 규정을 개정해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이 논점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장로교회나 캐나다연합교회는 은퇴자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대로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은퇴자들이 언권 회원이었던 우리 교단 역시 오랜 동안 부족함 없이 지내왔다. 미국과 캐나다 교회 은퇴자들은 투표권이 있는데, 우리는 없는 것이 잘 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못 가진 것이 아니라 갖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헌법 수정이라는 절차를 거쳐 은퇴목사들이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면, 무엇을 위해 은퇴목사들의 투표권이 꼭 필요한 것인지 상당한 이유와 목적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투표권으로 어떻게 노회와 교회에 유익을 끼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 밝혀야 더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투표권이 회복됐을 때 따라올 수 있는 사안들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일단 투표권이 회복되면 현직 회원과 은퇴자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 진다. 투표권이 회복되면 정회원이니 선거권뿐 아니라 피선거권도 동시에 갖게 된다. 물론 노회장이나 총회 총대를 해보겠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투표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노회 부서에도 배치돼 부장이나 기관의 이사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노회 투표권이 회복되면 정회원으로서 매번 노회의 전 회기에 참석해야 한다. 본이 돼야할 은퇴목사들이 투표권만 행사하고 이석할 수는 없다. 이와함께 은퇴목사들의 투표권 회복은 노회나 교회의 은퇴 장로나 다른 은퇴자들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은퇴자들의 결의에 영향을 미치는 당회와 모임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필자는 은퇴자들의 일은 자신의 자리와 권한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개혁과 변화 앞에 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하는 일일 것이다. 사무엘의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 하겠다(삼상 12:23)"는 결의가 우리 것이 돼야 한다. 은퇴자는 떠난 사람들이다. 떠나는 사람은 말없이 떠나야 하고 그 뒷모습도 아름다운 여운을 남겨야 한다. 필자는 그런 은퇴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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