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 25~30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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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8일(월) 18:13

월-믿음을 더하는 방법
본문 : 눅 17:5~10
찬송 : 490장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믿음을 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첫째,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에 보면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또한 믿음에는 산 믿음과 죽은 믿음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산 믿음을 뜻한다. 따라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겨자씨 같이 가장 작은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믿음을 뜻한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되고 마침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만큼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순종해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할 수 있을 만큼 믿음은 자라게 될 것이다.
 
둘째,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사도들에게 한 종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종이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 할지라도 주인이 그 종에게 수고했으니 앉아서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주인의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 수종 든 후에 먹고 마시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또한 주인이 명한대로 다 했다고 이 종에게 사례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종과 같이 우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라고 한다. 이와 같은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된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결코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되며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의 믿음이 날로 더하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이 자라서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여 보시기 바란다. 작은 말씀부터 차근차근 지켜 나가고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어떤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셔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그 믿음을 증거할 수 있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과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날마다 믿음이 더해지는 복을 받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길윤 목사
김해한빛교회

화-맛보면 알게 된다
본문 : 벧전 2:2~3
찬송 : 200장

여행, 운동, 음악, 영화 등 무엇에든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 깊이 빠지는 '마니아'가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생활에 활력을 주는 좋은 쪽에 마니아가 있는 반면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중독 증상을 보이는 해가 되는 마니아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니아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건강한 믿음의 마니아 생활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2절 말씀을 보면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첫째, 한 번 맛을 보면 된다. 자식이 아주 귀한 집에 시집온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다. 손자를 너무 예뻐한 할머니가 손자를 독점하려고 고집을 부려 가정불화가 생겼다. 할머니가 아무리 손자를 예뻐한들 엄마 젖을 맛본 아기는 엄마만 찾고 울 것이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맛 본 사람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믿음의 맛은 말씀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믿음의 맛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은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같은 교회라고 아무 교회나 가고, 성경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유혹에 아무 곳에서나 성경을 배우고, 아무에게나 안수를 받으면 안된다. 요즘세상에 자신이 메시야라고 유혹하는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들끓고 있는가?
 
셋째, 사모한 사람이 먼저 맛본다. 어미 새는 입을 크게 벌리고 우는 새끼에게 먼저 먹이를 준다. 하나님께서도 간절히 사모한 사람에게 믿음의 맛을 보여 주신다. 그래서 본문 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방법은 선포된 말씀인 설교를 사모하고,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사모하고, 계시된 말씀인 예수님 즉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두기 마련이다. 세상 사람들은 헛된 것들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마니아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마니아가 되어 믿음의 맛을 보고 영안이 열려 건강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믿음의 맛을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 하며 늘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양진 목사
월광비젼교회

수-하나님 문지기
본문 : 시 84:1~12
찬송 : 428장

어린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통령, 혹은 장군, 의사 등을 선호하던 적이 있다. 요즘에도 여전히 큰 꿈이 대세이다. 그런데 본문은 사람들이 큰 꿈만을 이루려할 뿐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말씀도 신앙도 사랑도 접을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관계를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편의 저자는 잘 살고 장수하기 보다는 주님과 살기를 원한다. 풍요롭게 살기 보다 주의 전에서 정직하게 살기를 원한다. 가장 복되고, 가장 아름다운 삶이 어떤 모습인가를 정의한다면 주님과 더불어 주님의 말씀과 더불어 사는 삶인 것을 노래하고 있다. 출세하기 위해 말씀을 저버리는 사람은 미련한 인생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자신의 큰 꿈 이루기 위해 정의를 접고 사는 인생,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양심, 진리, 말씀을 거부하고 산다면 그 인생은 분명 실패한 인생으로 평가된다. 차라리 꿈을 접고, 출세의 기회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말씀을 잡고 사는 것이 복된 인생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10절의 말씀을 음미해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한 날과 천 날은 1000배의 차이가 난다. 한번 모른 척 하면 천 배의 고수익이 보장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가 아니기에 거부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이다.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장막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함과 미래가 보장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거하려면 악과 타협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악과 타협을 하고 악과 손을 잡아야하는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차라리 하나님 문지기를 자처한다. 문지기란 힘든 일이다. 편안함도 없고, 미래도 보장되어 있질 않다. 지위가 더 높아지지 않는다. 그렇다해도 붙잡는 것은 말씀이요, 더 많은 이익이 생기지 않아도 진리를 원칙으로 삼는다.
 
"차라리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겠습니다"라는 고백은 문지기의 소박한 꿈만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다. 큰 꿈을 갖더라도 말씀의 원칙은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을 지키고, 더디 가더라도 말씀을 지켜야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말씀으로 행해야 한다. 우리의 지위가 문지기라 할지라도 믿음의 원리를 고수하고 생명의 말씀을 고수해야 한다. 이 길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석 목사
대구제이교회

목-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 : 요 21:15~18
찬송 : 315장

한 여교사가 문제 학생의 가정을 방문해 문제의 원인이 아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고통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어머니가 쓰던 향수와 목걸이를 달라고 해서 사용하자, 아이가 안정되고 공부에 집중해서 나중에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사랑은 어떤 사람도 치유하고 회복되게 한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내용이다. 조반을 챙겨주신 부활의 주님이 식사를 마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베드로는 자신을 요한의 시몬이라고 부를 때 "넌 약한 자로서 실패한 자야!"라는 말로 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다른 제자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창피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가파오'라는 신적인 사랑을 하느냐고 질문할 때 도무지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왜 이런 부담되는 질문을 했을까?


그것은 예수님을 부인한 요한의 아들 시몬을 반석 같은 믿음의 베드로로 회복시킬 뿐 아니라, 물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로, 주님의 양을 치고 먹이는 목회자로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회복시키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주님이 시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던진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고백이었으며, 세 번이나 반복하신 것은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치유하기 위함이었으며, 우정적인 사랑인 '필레오' 밖에 하지 못한다고 고백하는데도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신뢰하고 사명을 맡긴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신다.
 
부활의 주님은 회복시키는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며, 재 소명 받고 멋진 새 출발을 한다.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주님의 회복시키는 사랑을 통해서 성숙되고 부름 받은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미국 달라스 침례교회의 크리스웰 목사는 젊은 시절에 사냥을 좋아했는데, 한번은 숲속에서 사람을 사슴으로 오인해서 살인을 하고 말았다. 절망 중에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목회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 교우들은 그의 허물을 주님의 사랑으로 덮고 용서하며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해 주고 목회를 계속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후 크리스웰 목사는 회복되었고, 사냥을 끊게 되었으며 오로지 목회에 전념해 세계적인 교회로 부흥시키고, 어떤 죄인이라도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필자의 교회 임직자들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이 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낌없는 지지와 협력을 해 주고 있다. 오늘의 나와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회복시키는 교우들의 회복시키는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여러분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의 회복시키는 사랑이 가득해지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힘들고 지쳐 실수하고 실패하는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웅주 목사
전민제일교회

금-하나님의 뜻에 관심 두는 사람
본문 : 룻 3:1~5
찬송 : 413장

신앙생활이란 자신의 뜻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나오미와 룻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상실감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각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각이 있으면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둘 때 어떻게 은혜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켜 주시는 지 살펴보자.
 
첫째로 잃어버린 꿈을 회복시켜 주신다. 나오미는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보아스가 밭에서 룻을 관심있게 보고 보호해 주게 된 룻이 하루 종일 거둔 곡식은 한 에바 (대략 20kg)정도 된다. 그러나 나오미는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을 두었다. 은혜에 대한 감각이 있으면 우리가 어떠한 형편 가운데 있을지라도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나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이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된다. 나오미가 볼 때, 보아스는 자신과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의 유익을 취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보다는 며느리의 행복을 더 사모한다. 그 결과 룻이 행복해질 뿐 아니라 더불어 나오미가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났다.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 함께하는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면 순종하는 자가 된다. 나오미가 룻에게 제의한다. 보아스가 피곤하여 잠을 청하기 위해서 누울 때에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룻은 이방여인이다. 자칫하면 오해를 받아 쫓겨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순종하였다. 나오미를 통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는 자는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인 것 확실하지만,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다. 그러므로 끝까지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면 된다고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룻이 있어야할 자리, 보아스가 있어야할 자리, 나오미가 있어야할 자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제자리를 찾도록 축복해 주신다.
 
오늘의 기도
 
나의 욕심보다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 주님 주신 축복을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철규 목사
상일교회

토-구원의 확신을 찾아
본문 : 시 63:1~4
찬송 : 288장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능력, 돈, 친구, 취미, 오락 등은 우리가 심각한 병으로 누워있을 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우리는 홀로 남아 누구에게도, 어떤 것으로도 도움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무리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전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을 전하려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삶 가운데서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평온하고 온유한 모습을 보여줄 때 그들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 살 때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확신을 소유할 수 있을까? 이 생명력 있는 지식 즉, 구원의 확신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가능성을 믿지 않기에 오늘날 사람들이 이 확신을 찾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 가능성을 믿지 않을까? 그것은 가르쳐주는 지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쳐 주는 자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 결코 가르쳐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차갑고 이성적인 믿음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전인격적인 경험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구해야 한다. 주께서 성령의 선물을 주실 때까지 찾고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이다. 다윗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찾아 헤메였다고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했다. 우리도 이 축복이 임할 때까지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살펴본 후 겸손함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소망없는 자처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자처럼 심령의 가난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옥 목사
천안남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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