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의 용도전환이 필요하다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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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2일(화) 14:00

1994년 12월 31일로 KNH 후원은 종료됐다. KNH 후원은 1995년 1월 제9회 이사회에서 결산되었고, 1995년 8월 제10회 이사회에서 한 번 더 확인됐다. 제9회 이사회에 제출된 1994년 후반기 감사보고서에는 'KNH가 후원해 준 것에 대해 감사히 여기며 앞으로 그 자리를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제도적으로 보완해주실 것을 건의합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1994년 한 해 동안 KNH 후원을 받는 시설은 16개였고, 후원금액은 1271만 1332원이었다. KNH 후원을 받던 아동 38명 중에서 형편이 좋아진 16명의 후원은 중단됐다. 그리고 22명은 작은자복지선교회의 국내 후원아동으로 전환됐다. 

KNH 후원이 종료되면서 그동안 KNH 후원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던 에덴선교원 김강순 원장은 독일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청계천 판자촌에서부터 시작돼 도시 빈민지역과, 농촌, 탄광지역, 낙도 어린이들에게까지 KNH후원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됐고, 그 후원금이 어떻게 활용됐으며, 복음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나타나 있다. 

작은자복지선교회가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병합된 후 여전도회전국연합회 각 지역에서 시설 설립이 추진됐다. 농촌 인구 노령화와 유아원 원아 감소 때문에 독정유아원의 시설종류 전환도 시도됐다. 

독정유아원은 KNH 후원을 처음 받기 시작했던 청계천 판자촌 사람들이 정착한 남양만 간척지인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 유아원이 설립됐을 때에는 한 가정에 2~3명의 자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성장해 지역을 떠났고, 정착했던 젊은 사람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갔다. 1989년 한아협 남양만지역어린이집 교사회에서는 연합운동회와 같은 연합사업을 계속 개최해야할지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지역 아동들의 수가 감소됐다. 교실 3칸, 20평 정도의 부엌, 40평 정도의 식당, 남녀 수세식 화장실 5칸, 남녀 목욕탕 각 1칸이 있는 넓은 유아원 시설을 사용하는 유아가 겨우 10여 명 정도였다. 시설 관계자들은 농촌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감안해 유아원을 노인들을 위한 시설로 바꾸고 싶어했다. 1994년 5월 임원이사회에서 이사들은 지역상황에 맞는 시설로의 변경을 허락했다. 그리고 새롭게 변경될 시설의 이름을 독정작은자의집이라고 정했다. 유아 시설을 노인복지시설로 바꾸는 데 필요한 비용 모금을 위해 영등포연합회, 경기연합회, 안양연합회가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도 구성했다. 

하지만 1996년 사회복지법인 설립이 계획되면서 독정유아원의 노인복지시설 설립 추진은 중단됐다. 대지 및 건물은 KNH 후원으로 마련됐기 때문에 독정리교회에 양도됐다. 그 동안 KNH후원으로 마련된 모든 부동산은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회에 기증돼 온 전례를 준수했기 때문이다.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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