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마을의 마당이 되자 (2)사회적 책임 다하라

[ 특집 ] "행함이 있어야 사랑이다"

김성건 교수
2016년 04월 12일(화) 13:44

김성건 교수
서원대 종교사회학ㆍ대전성남교회 장로

하버드대학의 하비 콕스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듯, 20세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종교운동으로 사도행전에 묘사돼 있는 초대 기독교의 역동적인 영적 현상과 체험을 되살리자는 오순절 성령운동을 들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현상은 교파를 초월해 교회들이 오순절 교회와 비슷하게 닮아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처럼 힘을 더해가는 성령운동의 에너지가 가져오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파장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성령운동이 방언, 기적, 은사, 신유와 같은 초월적이고 영적인 현상에 집중한 나머지 현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도날드 밀러와 테쓰나오 야마모리는 '왜 섬기는 교회에 세계가 열광하는가? 기독교적 사회참여의 새로운 모델, 성령운동(교회성장연구소, 2008)'에서 영적인 체험과 신비로운 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지역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 앞장서는 성령운동 신자들의 출현에 주목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신자는 사회참여를 하지 않고, 사회참여를 하는 신자는 영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선진적' 성령운동가들은 영성과 사회참여 사이의 어려운 결합을 이뤄낸 독특한 존재들이다. 위의 책에서 저자들이 직접 관찰하고 묘사한 선진적 성령운동가들은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과 집을 제공하고, 윤락 여성과 미혼모들을 돌보며, 에이즈의 위험성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운영하며, 마약 중독자들을 마약에서 해방시키며, 빈민가에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통상 이런 일들은 교회의 자체적인 헌금과 인력으로 추진되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지역의 비정부기구나 정부와 손을 잡고 하는 사례도 소수이지만 관찰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적 성령운동가들을 다른 사회운동가들과 다르게 하는 점은 무엇일까? 세속적 사회운동가들과는 달리 성령운동가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성령체험과 같은 영적인 경험이다. 성령운동가들은 기도 중에, 혹은 성경을 읽으면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선진적 성령운동가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이웃을 섬기고 사랑한다. 이렇게 초월적인 힘에 도취되어 펼쳐지는 성령운동가들의 사회봉사는 지역사회의 분위기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성령운동에는 인간적인 언어로는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 그 이상이 존재한다.

최근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일각에서 다행히도 이른바 '마을목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웃 사랑에 대한 구체적 행위 없는 교회는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다. 2016년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는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곧 '저출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노령층의 빈곤율이 높고 다양한 가족 문제가 빈발하고 또한 사회적 고립이 나타나는 등 '고령화'는 또 다른 중대한 사회문제다. 한국 개신교는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고령화, 죽음, 종교성 사이의 상호 관련은 물론 출산율과 종교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선구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오늘의 한국 사회 내에서 서로 맞물린 두 개의 대표적 사회문제인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나 방안을 모색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선진적' 성령운동의 사회적 파장에 주목하는 필자는 아래에서 한국교회들 중 재정이 자립된 중간 규모 혹은 그 이상의 규모를 갖는 교회들이 마을 목회의 일환으로 저출산과 고령화에 주목해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가능하면서도 변혁적인 대응 방안을 크게 두 가지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최근 맞벌이 핵가족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엄마 양육론'에 맞서서 '공동육아'의 가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부터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종교(특히 개신교)가 참된 신앙인 공동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현 시점에서 '협동적인 육아'를 실천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본다. 오늘의 상황은 '질 좋은 대리 양육 시스템'을 국가가 저비용으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회가 관 주도의 복지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공동육아의 자율성과 자발성 원칙을 중시하면서 그 자체 내에서 독립적인 공동 협동적 육아 시설을 마련하여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만 있다면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특히 0~3세 영유아를 가진 엄마들로서 현재는 아이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믿고 맡길 친밀한 공동체가 주변에 거의 없다. 한국교회는 공동 육아 사업을 하기 위해서 일단 공간의 마련의 확보가 어렵지 않으며 인적 자원도 풍부하다. 그리고 교회 내 행정 인력의 활용도 가능하고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부모들과 자원 봉사자들 간의 유대도 잘 형성돼 있다. 또한 교회의 공동육아 사업에 활동기 어른 신도들(50~60대)이 참여하여 돌봄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최근 순천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들 그룹 홈' 사업을 통해 지역의 고령화가 초래한 노인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한데 모여 숙식을 해결하는 그룹 홈 사업은 고독사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난방비 절감, 숙식 해결, 외로움 극복, 자녀들의 노인 부양 부담 및 비용 감소 등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부터 필자는 한국교회 역시 농어촌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도시지역에서도 교회의 기존 시설의 일부를 이용하든지 아니면 인근의 일반 가정집들을 매입해서 홀로된 노령 교인들을 위한 남녀별 그룹 홈을 만들어 이곳에서 공동 생활하도록 만들어 준다면 고령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재정적으로 자립을 이룬 지역교회들부터 교회의 물질적 자원과 다양한 인적 자원을 우선 투입하여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에 가까운 '그룹홈'을 만들어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이 같은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교회 재정의 편성과 집행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현상 유지에 치중한 관행을 벗어나서 근본적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높은뜻정의교회(오대식 목사 시무)가 매달 한번씩 주일 헌금을 교회에 드리지 않고 그 대신 신자들이 주변 이웃들 중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전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나게 시도한 사례는 한국교회의 실추된 사회적 공신력을 끌어올리는 데 의미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실질적 개혁과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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