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다시 져야 할 십자가

[ 논단 ]

김등모 목사
2016년 04월 12일(화) 13:42

김등모 목사
대전영락교회

또 한 번의 부활절이 지나갔다. 부활절을 전후해 많은 이들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한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루신 부활의 기쁨은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부활 전에 지신 십자가를 예수님과 함께 지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만약 지금 예수님이 다가오셔서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지 않겠느냐?" 물으신다면, 선뜻 "네~ 주님,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됐다. 2016년 현재, 한국교회가 더 이상 부흥 내지는 성장할 것이라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많은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얼마 없다. 주님께선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16:24, 막 8:34).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도 말씀하셨다(마 10:38, 눅 14:27).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분명히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교회의 중심에 있어야 할 십자가가 교회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교회가 십자가에서 멀어질 때, 교회는 아무런 힘도 없고 능력도 나타내지 못한다. 그저 신앙처럼 보이는 껍데기만 있을 뿐이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그 분의 옷을 제비뽑아 나눠 가진 군인들처럼 내용 없는 형체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는 알고 느끼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듣거나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담은 영상물을 보면서 눈물을 짓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추상적인 어떤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우리 삶에서 만나는 상황이 십자가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해서 모두 십자가가 아니고, 또 그 상황을 견뎌낸다고 해서 십자가를 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만나는 상황 가운데 예수님을 드러내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타내었을 때,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누군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고, 속옷을 요구하면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5리를 가게 하면 10리를 함께 가고, 무언가를 내게 바라는 사람에게 주는 것을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고 자신을 괴롭게 하는 자를 위해 오히려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할 때 어찌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련해 보일만큼 착한 행실을 하는 교회를 볼 때, 교회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세상이 궁금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예수님 때문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이런 구체적인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없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비난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온 세상이 바란다. 

교회가 부흥하는 힘은, 어떤 전략이나 체제 혹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를 지는 것 뿐이다. 그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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