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다

[ 땅끝에서온편지 ] <1> 태국선교사로서의 부르심

홍경환 선교사
2016년 03월 29일(화) 17:13

태국은 한국인에게 아시아의 유명한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보다 조금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태국은 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독립을 지킨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 전쟁 시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으로 보내주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태국은 국왕과 불교와 민족의 세 가지 이념위에 서 있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태국의 적ㆍ백ㆍ청의 세 가지 색으로 된 타이 국기에서도 나타난다. 붉은색과 흰색과 파란색은 각각 민족, 불교, 국왕을 가리킨다.
 
태국 불교는 타이 왕조사의 초기 때부터 왕실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믿는 보편적인 종교로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이념이 되어 왔다. 불교는 한 마디로 타이 사회를 결합시키는 하나의 문화적 접착제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태국인은 불교인으로 태어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 왕권의 정치적 역할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 태국의 역대 국왕들은 대부분 타이 민족의 역사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위상은 1932년 쿠데타를 통해 입헌 군주제가 도입되어 태국의 국왕이 실질적 권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불교와 국왕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태국은 근대적인 타이민족 개념도 불교와 국왕이라는 두 가지 문화적, 제도적 바탕 위에서 발전하고 형성되었음은 태국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국토 전체 마을의 수보다도 절이 많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 있는 나라, 주변 나라에서 수많은 유적들을 빼앗아 가져와 자기 것처럼 자랑하는 나라, 일본의 경제 식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제가 판치는 나라가 바로 나의 선교지 태국이다. 태국은 우리나라보다도 먼저 복음을 들은 나라이지만 작년 태국개신교조직위원회(TPCCC)의 통계에 의하면 태국 개신교 복음화율이 0.58%이다. 10년 전의 통계가 0.2%였기에 큰 성장을 이룬 셈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필자와 태국과의 인연은 1990년도부터 시작되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신학교 강의실에서 선교학을 배우면서 선교현장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다.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태국에서 견습선교사를 요청하는 글을 보았고 나는 주저 없이 신대원에 휴학계를 내고 태국으로 향했다.
 
한 해 동안 태국 신학교 기숙사에서 현지 신학생들과 가깝게 지냈다. 지금은 교단 신학교 교수, 노회장, 담임목사 등으로 활동하며 교단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만나면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며 서로 즐거워한다.
 그 당시 태국 내 한국인 선교사의 숫자는 열 가정이 채 안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일본 사람이냐고 먼저 물었고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화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피차 언어가 소통할 만큼 충분치 않은데다가 그들도 우리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독교 하면 서양종교이고 선교사하면 외국 사람들인 줄로 생각하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한국 선교사는 그들에게 다소 낯선 존재였다.
 
때로는 일본인들과 같은 근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중국인들의 대륙기질도 물려받은 듯 빠르지 않은 이들의 삶의 박자와 이곳 기후가 숨을 막히게 했지만 하나님의 선교에의 부르심을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목사는 소명이지만 선교는 사명이다. 소명은 부르심 받은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고 사명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명의 자리로 나아갔더니 그 자리에서 소명이 분명해졌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다. 


홍경환/총회파송 태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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