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같은 교회

[ 목양칼럼 ]

엄대용 목사
2016년 03월 29일(화) 14:21

필자가 새능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1997년 12월 25일이다. 굳이 날짜를 밝히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과 같아서 평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벌써 19년차에 접에 들었다. 명성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다가 선교사로 가려고 당회의 허락을 받고 다음 주에 IMF가 터져서 지금의 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부임하여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고, 어떻게 당회를 운영해야 잘하는 건지 제직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교하는 것 등등 목회에 대한 전반적인 것 하나하나가 다 부족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고 당황되었다.

큰 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는 담임목사가 다 이끌어 가시고 부목사로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작은 교회에 부임하여 모든 것을 내가 맡아서 진행하려고 하니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여자들이 시집가서 처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어보았다. 나의 목회도 마치 이와 같이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주일설교하고 돌아서면 새벽기도회 설교해야하고 며칠 있으면 수요예배 설교해야 하고 또 바로 주일이 돌아오고, 심방해야 하고 ….

부임하고 몇 주 동안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 목회를 할 줄 알았더라면 전에 있던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목회하는 것을 유의 깊게 살펴보았을 것을, 행정하는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보았을 것을,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잘 모아 놓았을 것을….'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은 것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큰 교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있어 그나마 감사할 뿐이었다. 지금의 교회로 부임할 때 김삼환 목사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해주신 조언은 그 후에 목회에 큰 힘이 되었다.

몇 개월 동안 담임목사가 공석이어서 연말에 부임하여 다음해 직분자들을 임명해야 하는 일이 시급해서 연초에 대략적으로 마무리를 하고 당회를 거쳐서 발표하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의 장로들이 담임목회 초년병인 젊은 목사를 믿고 따라주셨으니 너무 고맙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부임한지 2개월여 되어서 인선을 마무리하고 당회를 하였을 때이다. 당시 장로 세분이 계셨는데 당회를 하면서 선임 장로가 내 사례비 문제를 거론하였다.

새로 담임목사도 부임했고 그동안 사례비도 적게 드렸는데 사례비를 인상하겠다는 취지의 말씀이셨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에 사례비는 동결하겠다고 하니 안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여러 차례 말이 오가다가 당회자료를 던지다시피 하면서 안된다고 하였다. 순간 당회자리가 어색한 적막감이 흘렀다. 젊은 목사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교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강하게 대응을 했는데 어색한 자리가 되었다.

목사의 뜻대로(?) 당회를 마치면서 "장로님, 제가 장로님들을 아버지처럼 모시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아들처럼 생각해 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 당시 장로들은 나의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위였다. 이 말이 장로들에게는 퍽이나 고마웠나보다. 이후로 노회에서도 좋은 소문이 나고 어르신들로부터도 과찬의 말씀을 많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말이 나의 목회에 큰 힘이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교회가 평균 4년마다 목회자가 떠나면서 노회적으로 목사 쫓아내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내가 부임하기 16년 전에 교회가 분립되는 큰 아픔도 겪었다. 당시 교회가 마을 문중 속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나뉜다는 것은 마을에서 큰 이슈였고 충격이었다고 후문으로 들었다. 이 일로 교회의 이미지는 많이 나빠 있었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누가와도 오래 머물 수 없는 상황인 형편이었다. 그러니 교인들에게도 목회자가 자주 바뀐다는 것은 상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목사가 "아버지처럼 모시겠다"는 말은 장로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목회 초년병에게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는가?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며 봉사했던 분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그분들의 수고와 헌신을 다 알아주지는 못하지만 그분들을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마음만 가져줘도 그렇게 흐뭇했나보다.

이후에 목회에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당회를 할 때에 나는 이 작전(?)을 몇 번 더 써 먹었다. 이 작전은 계속해서 유효했고, 어느 부모가 자식을 모질게하고 내치겠는가? 지금은 이분들이 다 원로장로들이 되셨다.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뚝배기 같이 투박스럽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수를 사랑하고 섬기고 헌신했던 분들이다. 그분들의 이런 마음을 다 알아주지는 못하지만 "제가 부모님처럼 모시겠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에 마음 문을 여시고 좋아하셨던 모습이 지금까지 나의 목회에 있어서 늘 자리하고 있다. 교회는 가정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처음 가졌던 목회의 자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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