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솔직하지 못하면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6년 03월 22일(화) 16:27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과거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구나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감출 수 있는 것은 감추고, 드러난 부분만 적당히 정리해 상황을 넘기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의 최근 사례는 과거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기업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인 루츠 부드라스 (Lutz Budrass)는 최근 '나치 시대의 루프트한자'를 주제로 한 책을 발간했다. 역사학자가 특정 기업의 과거사를 책으로 출간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기이한 것은 이 책의 발간일 바로 2주 전에 루프트한자가 자체적으로 기업사를 발간한 점이다.

루프트한자가 발간한 책은 기업의 역사를 항공운항 기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과거 나치 정권과의 관계는 다루지 않았으며, '강제 노역'이라는 단어도 직접적으로는 언급되지 않았다. 반면 역사학자인 부드라스의 책에서는 전쟁 준비 과정에서 루프트한자의 역할과 나치와의 관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1926년 루프트한자의 설립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을 재무장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이 회사의 등기임원이었던 에르하르트 밀히(Erhard Milch)는 1929년 나치에 입당하였으며, 얼마 후 제국항공부의 차관으로 임명됐다. 또한 이 책은 루프트한자의 강제 노역에서 구타와 고문 그리고 포로수용소로의 이송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실, 루프트한자는 이미 15년 전에 앞에서 언급한 역사학자 부드라스에게 자사의 역사를 연구해 줄 것을 의뢰했었다. 그 결과물은 기업 설립 75주년인 2001년 발간될 예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간이 취소됐다. 그리고 부드라스는 15년이 지난 이후에야 독자 출간을 하게 된 것이다. 루프트한자 경영진과 역사학자 간 어떤 갈등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만드는 정황이다. 

아픈 과거사를 가진 기업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소비자에게 잘못을 용서받고 과거는 잊히는 상황일 것이다. 과거의 잘못이 여론에 자꾸 화자 되면 기업 이미지는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나치 정권과 유착이 없었던 독일 대기업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알리안츠, 폭스바겐, 도이체방크 등 대다수의 독일 대기업들은 루프트한자와는 다른 과거사 정리 방법을 택했다. 이들은 역사 학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연구하도록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했으며 그 결과물을 발간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했으며, 소비자들에게 용서를 얻었다. 

반면, 과거사 출간을 거부한 루프트한자의 어두운 과거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하고 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길이 자신의 과거와 솔직하게 대면하는 데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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