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사과의 때, 놓치지 말자

[ 목양칼럼 ]

강인구목사
2016년 03월 22일(화) 14:45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집사님이시군요!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야!이 XX야! 니가 뭔데 나를 예배당에서 나가래! XXX아!" "집사님! 거기 어디세요? 술 마시고 계시는군요. 말은 한 번 하면 다시 담지 못하니까, 후회하실 말씀하시지 마시고, 정신 맑아지면 내일 낮에 만나서 예기하시죠!"

예전 부목사 때 일이다. 주일 낮에 제직회가 열렸다. 뒷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앞에 계신 집사님께서 발언을 하셨다. 그날 회의 흐름에 좀 안 맞았나 보다. 앞자리에 있던 안수집사님과 장로님이 일어나, 뒤로 돌아서서 집사님을 나무라듯 공박하였다. 원래 말주변이 별로 없는 분이다. 제직회에서 발언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가만 지켜보니 그냥 두었다가는 곤욕을 치르게 생겼다. 마침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터라,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조용히 채근하였다. "집사님, 잠깐 자리를 피합시다. 밖으로 나갑시다!"

항변도 못하고 당하고 계시는 것이 안쓰러워 도와주려고 한 것이 화근이 되었나 보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집사님이 쏟아내는 혀 꼬부라진 상스러운 말을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저녁, 교회에서 만났다. 어제 일을 설명하고, 몇 가지 좀 나무랐다. 가정과 교회에 불성실한 생활과 술 취한 채 새벽기도실에 누워 있던 행동들을 지적했다. 젊은 부목사에게 바른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언짢으셨나 보다. 신경질을 내면서 소리치고 나가버리셨다. 며칠 뒤, 사기죄로 형사들이 교회로 찾아와서 집사님을 데려갔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계시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깜짝 놀라 남선교회원 몇 분과 면회를 가기로 했다. 그 때 일도 사과드리고 싶었다.

면회 가는 날 새벽, 밤사이 집중폭우에 교회 지하실이 흙탕물에 잠겼다. 동원 가능한 모든 교인들을 모으고, 펌프를 가져다 물을 퍼내고, 망가진 집기를 밖으로 꺼내서 청소하기에 바빴다. 면회 날짜를 다시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집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젊은 목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불쾌한 마음으로 헤어진 집사님께 진심어린 사과를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면회 가려다 교회침수사건 때문에 결국 사과도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늘 아쉽고 안타깝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특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절대로 때를 놓쳐서는 않된다. 다시 기회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려다가 사과할 일이 생각나면 예배 드리기를 중단하고 먼저 가서 사죄하고 용서 받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사과하고 용서하는 일은 생각나는 즉시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해야 한다. 용서 못한 미움, 사죄하지 못한 미안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장남인 내게 서운한 마음이 크셨다.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신 아버지는 장남이 명문대학을 입학한 것이 커다란 위안이었다. 명절에 고향 가시는 발걸음도 가벼워지셨다. 그런데 아들이 군복무 중에 몰래 입시를 다시 치르고 신학대학을 갔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자살 소동'까지 벌이셨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아버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우셨다. 병중에 계시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달려갔다. 의식이 없었다. 대화가 불가능했다. 마지막 숨을 쉬고 계셨다. 조용히 아버지 머리맡에 앉았다. 귓가에 입을 대고, "아버지, 마음 서운하게 해 드린 것 다 푸시고, 편안하게 천국 가세요!"라고 속삭였다.

그래도 마음 한 켠은 아직 편치 않다. 속 시원히 서로 사과하고 용서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저하지 말고, 오늘 당장 사과하자. 망설이지 말고 먼저 용서하자.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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