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14~1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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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0일(목) 17:25

월-십자가와 기도
본문 : 막 8:34
찬송 : 461장

이제 봄이 피부에 느끼도록 다가왔다. 매화 꽃망울이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긴긴 겨울 잠을 떨치고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세워진 구속(救贖)의 법을 성취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고난이다.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원칙대로 공의로운 방법을 통해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죄를 심판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증표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봄기운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지어야 할 십자가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
 
첫째, 교회가 지어야 할 십자가와 기도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얼어붙게 한 전반적인 양극화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사회의 양극화는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이 빚어낸 죄이다. 계층 간의 빈부격차의 해소를 위한 교회 나눔과 섬김을 위한 윤리가 생활화 되고 정착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소유는 나눌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높아진다.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나누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버림받게 될 것이다.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둘째, 뿌리 깊은 지역갈등의 해소를 위해 교회가 앞장서서 십자가를 지고 기도해야 한다. 혈연과 지연과 학연으로 둘러쳐진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는 사회발전의 가장 큰 적이다. 지역갈등으로 인한 국가의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죄성에 기인한다. 통일을 향한 교회의 기도는 지역갈등해소를 향한 균등한 기회를 교회 안에서 제공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은 십자가를 통해 혈연과 지연과 학연으로 둘러쳐진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넘어서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교회가 복음으로 통일되지 않으면 남북통일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념논쟁을 통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중지되고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교회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동의 유익을 창출하기 위한 상생의 합리적 결론과 해법이 나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특별한 환경, 특정 지역, 특정 계파 만이 만족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들만이 자유를 누리는 사회는 생동감이 없다. 오늘도 내 십자가를 지고 기도의 언덕을 오르자. 기도는 모든 것을 변화시기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주님의 왕국을 세우셔서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 속에 감추어진 생명의 보물을 찾을 때까지 믿음의 우물을 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석윤 목사
광주상록교회

화-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본문 : 고전 2:1~5
찬송 : 314장

페이스북 창립자인 저커버그는 이 시대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최근 그는 자신의 옷장을 찍은 사진 한 장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그의 옷장에는 회색 티셔츠와 후드티 몇 벌만이 걸려 있었다. 주로 청바지에 회색티를 입고 등장하는 그에게 왜 회색티만 입는지 질문하는 기자에게 그는 "다른 일을 결정하는 일에 힘을 쏟지 않고 오직 페이스북에만 신경을 쏟기 위함입니다"라고 답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어떤 일에 집중할지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어디에 관심을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인생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신앙공동체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 도전을 준다. 바울 시대의 고린도교회는 자칭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우월 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인간적인 지혜와 명분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로 인해 공동체에는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바울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울이 선포하고 자랑했던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십자가는 물리적인 힘과 악한 영의 세력을 하나님께서 파하시고 승리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세상은 학력, 권력, 명예, 출생신분 등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을 자랑하는 일에 빠지지 말고 주님이 행하신 일을 자랑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인간의 언변과 지혜는 교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 안에서 화합과 일치를 선포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우리의 약함이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연약함을 통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의 강함을 드러낼 수 있다.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시어 거룩한 사역에 초청하신 이유가 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통해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다. 다음 세 가지 교훈을 마음에 새기시길 바란다.
 
첫째, 자신의 연약함에 머물러 있다가 퇴보하지 말고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께 초점을 두라. 둘째,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 안에 거하라. 셋째, 자기 과시와 자랑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겸손함으로 오직 성령께서 행하시는 역사를 자랑하라.
 
오늘의 기도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광호 목사
더드림교회

수-제자의 삶을 삽시다
본문 : 요 1:35~42
찬송 : 144장

오늘은 우리가 먼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묵상하고, 다음으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받기 위해 오신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것은 선언이다.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어린 양처럼 제물이 되셔서 죽으실 것을 선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것은 자기희생과 사랑과 용서를 죄인된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과 용서를 본받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가는 제자의 모습이 덧입혀져야 한다.
 
세례 요한에게도 제자들이 있었다. 그중에 안드레가 있었다. 세례 받으신 이튿날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두 번째로 세례 요한이 말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을 듣고, 그때서야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깨닫게 된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라간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는 형제 베드로에게 달려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이신다. 그래서 복음의 증인으로 삼아주셨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단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처럼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제자이인가? 이 질문에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그렇다. 우리가 하는 보잘것없는 일도 모두 소중한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천사처럼 돕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기쁨으로 해야 한다.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목수였다. 당시에 인정받는 화려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일이 아니라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영광 받으시기를 원한다. 우리가 특별히 목회자나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일터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깨닫는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깨닫고 제자의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제자의 삶을 사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승호 목사
고성교회

목-계시록에 나타난 일곱가지 복
본문 : 계 1:3
찬송 : 349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을 싫어하는 자는 없다. 모두 복을 받기를 원하여 세상 사람들은 돌에도 물에도 나무에도 우상삼아 치성을 드려 복을 받으려는 행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이요,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복이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22장까지 읽어보면 일곱가지 말씀을 지켜 자신을 삼가 잘 지키면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자라고 말씀을 실천할 때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는 복있는 사람이 된다.
 
둘째,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고난이 오고 환란이 오고 핍박이 와서 많은 괴로움으로 인하여 순교하는 자를 의미하며, 영적 삶은 곧 내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욕심이 무너지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속에서 역사하는 자를 일컬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항상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복이 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주인으로부터 일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신실한 사람이다.
 
넷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충성되고 신실한 주의 일꾼이 되어 마지막 주님의 거룩한 잔치에 반드시 청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이 첫째 부활에 참여 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거듭난 영생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거룩한 반열에 선 복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 말씀은 곧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의 행위를 요구하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 공의와 공평과 정의와 정직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자.
 
일곱째,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주님의 혼인 잔치 자리에 청함받고 참여할 사람은 반드시 예복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깨끗한 예복을 입으며 나의 행실이 정결하여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인해 청결하고 정결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조현 목사
세광교회

금-성령이여, 거룩케 하소서!
본문 : 벧전 1:13~16
찬송 : 190장

성령은 거룩한 영(Holy Spirit)이다. 성령은 신비한 능력이나 비인격적 에너지가 아니라 거룩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영이다. 성령 하나님의 제일되는 성품은 거룩이다. 성령님에게는 조금의 불의도 없으시며, 온전한 진리와 의와 영광으로 충만하신 분이다.
 
성령충만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거룩이다. 생각과 마음이 거룩해지고, 말과 행실이, 성품이 거룩해진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밝히시어, 더럽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죄의 실상을 알게 하셔서, 죄를 미워하고 끊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하기 전에 먼저 거룩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비롯한 모든 주의 종들을 쓰시기 전에 먼저 정결훈련, 거룩훈련을 통과한 후에 쓰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람에게 영적인 은사를 공급해주시고, 귀하게 들어 쓰신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할 때 사역이 먼저가 아니라 거룩이 먼저이다.
 
거룩이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거룩이다. 하나님과 연결되면, 보잘 것 없는 것 쓸모없는 것이 거룩한 것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 된다. 부족하고 허물이 많지만 하나님과 연결될 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우리들의 재능과 시간과 몸이 하나님과 연결될 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재능과 시간과 몸으로 재탄생된다.
 
둘째, 거룩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생기는 영적 감각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시고 영광으로 충만한지를 깨닫게 된다. 또한 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때만이 거룩이 무엇인지 알고, 거룩을 갈망하고 되고, 거룩에 이르고자 하는 열정이 생긴다.
 
셋째, 거룩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따라 살 때 생긴다. 성경이 노아, 욥, 고넬료 등을 의인이라 칭한 것은 그들의 행실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따라 살면 거룩해진다. 거룩이란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의 성품과 언행심사를 닮는 것이 거룩에 이르는 길이다. 거룩은 성령의 도우심과 더불어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거룩은 성령의 도우심과 내 자신의 부단한 훈련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생각의 거룩훈련, 말과 눈의 거룩훈련, 습관과 일상의 거룩훈련을 계속해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해가 갈수록 거룩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성령이여! 우리에게 성령충만과 거룩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성호 목사
서울베다니교회

토-메신저 요한
본문 : 요 1:19~28
찬송 : 407장

바벨론에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를 얻고 성전과 성벽을 재건했지만 또 다시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계시하셨지만 백성들은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400년의 영적 암흑기가 찾아왔다. 이 무렵,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에 놓여 있었다. 그 때, 혜성같이 등장한 이가 바로 세례요한이다. 그가 선포하는 회개의 메시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물었다. "당신이 메시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라고 묻는다. 여기서 '그 선지자'란 신명기 18장 18절에 근거한다. 하지만 요한은 모두 부정한다. 그는 자신을 단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만 소개한다. 그는 자신은 주연이 아니며 메시지의 본체도 아니며 단지 전령사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보잘 것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앞서 선포하고 예고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고 그 사명을 방해하는 심각한 유혹은 스스로 교만해지는 착각이다. 우리가 요한에게 첫째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가 겸손한 사명자의 모습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름에도 교만해지지 않았다.
 
둘째로, 세례 요한은 사명에 충실한 메신저였다. 그가 설명하고 증거하려 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는 인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였다. 그것은 죄의 문제였고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고 한 사람의 예외없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죄씻음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선포했다.
 
셋째로, 요한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했다. 26절에서 "내 뒤에 오시는 그이가 있고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고백한다. 자신에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예수님께 돌리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올바로 알았기에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정확하게 고백했으며, 사명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겸손할 수 있었다.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가? 내 삶은 무엇을 자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자.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드러내서 높이지 않으며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만 증거하는 참된 사명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광서 목사
영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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