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

[ 논단 ]

한재엽 목사
2016년 03월 04일(금) 14:07

한재엽 목사
장유대성교회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품격'에서 세 종류의 인생을 말했다. 

첫째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과 기대를 위해 끊임없이 뛰다가 결국 실패하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인생', 둘째는 조직원들이 자신에 대해 감사하는지 궁금해 하고 그 조직이 자신을 얼마나 인정하는가를 알려고 애쓰다가 실패하는 '조직을 위해 일하는 인생', 셋째로 마음에 끌리는 일을 잘하려고 힘쓰다 그것이 자신과 조직을 위한 것이 돼 행복한 인생이 되는 '천직을 위해 일하는 인생'이 그것이다.
이 세 종류의 인생을 신앙에 비추어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 여겨진다.

자신을 위한 신앙이 있다.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실은 그보다 숨은 목적이 따로 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결국 철저히 자기 자신의 욕구 혹은 이익만 채우려는 것이어서 그것이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 것을 아는 날이 오면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헌신짝처럼 내 던져버리고 돌아서는 신앙(?)이 그것이다.

또한 조직을 위한 신앙이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이 보이나 실제로는 자신이 속한 세상의 조직들 즉 지연, 혈연, 학벌, 이념 집단, 정파, 사회 계층 등에 의해 이루어진 단체의 이해 및 상관 관계를 최우선시하며 종교화한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신앙은 보이는 간판은 신앙공동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이 아니다. 하나님 대신, 조직이 원하고 조정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이미 최상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일하다가 언젠가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조직이 무너질 때 함께 실패하는 거짓 신앙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신앙이 있다. 이 신앙은 철저히 위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의 만드심, 부르심, 세우심에 의해 모든 것이 이뤄진다. 모든 피조물은 만들어주신 분, 불러주신 분, 세워주신 분을 향해 디디고 선 곳에서 위를 바라보며 그를 위해 존재하며 그를 위해 소비되어지고 쓰여지며, 그를 위해 찬양하고 경배한다. 존재 이유가 이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이익이나 속한 조직의 이해 관계가 앞설 수 없다. 이런 신앙은 설령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와 때에 자신의 바람이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자신을 소모품으로 쓰신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이 분명할 때는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이다. 

아브라함, 다윗, 바울같은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위한 선택을 하고 그 길을 변함없이 걸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그들의 신앙은 다른 것이 최우선일 수 없었다. 그래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날 수 있었고,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유ㆍ불리를 떠나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으며, 인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고난을 받게 하시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우리의 문제는 신앙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신앙을 향해가고 있느냐가 문제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이 자신이나 혹은 몸담고 있는 조직, 구성체를 위해 살아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삶'을 살게 된다면 창조 섭리에 맞는 삶에서 오는 참된 자유와 기쁨이 차고도 넘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쩜 우리 자신이나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고개 돌리는 일이 신앙 안에서도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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