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교회에 젊은 사역자가 필요하다

[ 기고 ]

김성룡 교수
2016년 02월 23일(화) 11:29

약 2년 전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학생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고등부 예배에 30명 이상 출석하는가?"라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가볍게 시작한 질문이 순간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약 40명이 출석하는 강좌였지만, 정작 손으로 표를 한 학생은 불과 2명뿐이었다.

본교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아닌지라 짐작했지만 상황이 그럴 줄은 몰랐다. 신학대학은 물론 한국교회의 미래와 관련하여 작지 않은 충격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영남신학대학교 입학관리처장을 맡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교회 학교의 학생이 감소하는 만큼 신학대학의 입학생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미래의 한국 교회를 위한 인재들을 찾아서 입학을 권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필자의 경우 주말이면 읍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농어촌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 방문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비가 쓸쓸히 서 있는 교회가 많다는 것이다. 분명 이들 교회도 과거에는 갓난쟁이에서 어르신들까지 함께 웃고 울면서 주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전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조용하다. 다소 불편한 사실이지만 이 현실을 그대로 수용해야만 할까?

지난 봄, 안동 가까이에 있는 단촌교회를 찾은 적이 있었다. 멀리서 왔다고 반갑게 맞아 주시는 목사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 농촌의 경우 젊은 층이 없기 때문에 교회학교가 비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간혹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농촌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그들의 상당수가 조손가정이라는 것이다.

즉 아이들의 부모에게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 부득불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맡아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다. 과거 한 지붕 아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까지 3대가 함께 사는 그리운 모습은 아닌 셈이다.

그래서 신학대학교에 한 가지 부탁을 하신다고 하셨다. 농어촌 지역에 젊은 전도사를 보내 줄 수 없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동네의 청소년들에게 형, 오빠, 누나, 언니, 그리고 삼촌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젊은 전도사가 오면 참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지역의 청소년들이 보다 쉽게 그들의 고민을 털어 놓고 상담하여 삐뚤어지지 않고 복음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농어촌의 현실에서 전도사를 청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간 힘들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신학대학교와 여전도회 같은 기관이 협력해서 그들에게 장학 혜택을 주고 또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농어촌 교회에서 봉사하게 하면 참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마치 과거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절에 농어촌에 파견되었던 공중 보건의를 연상케 했다.

오는 길에 대화의 내용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점점 위축되는 농어촌 지역에 어떻게 하면 젊은 전도사를 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마음만 있지 그것을 실행해 옮기기는 참 부담스러웠다. 교계의 사정도 있을 것이고 또 지방에서 본 한 단면만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민을 가슴 속에 두고 있는 것 보다 표현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농어촌 지역에 전도사를 보내 줄 수 있는 배려와 관심을 교계의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지방이 국가의 일부분이듯 농어촌 교회도 한국교회의 한 부분이다. 그 일부분에 합당한 인재가 없을 경우 한국 교회의 건강도 기대하기가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교훈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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