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혜창/창가의 사람

[ 연지동혜창 ]

안홍철 목사
2016년 02월 23일(화) 11:28

브룩클린의 제퍼슨 메모리얼 병원, 12층 낡고 좁은 병실에 죽음을 앞둔 두 환자가 있었습니다. 암으로 폐의 일부를 제거하여 숨쉬기 조차 힘든 '빈센트'와 사고로 척추를 다친 '파커'라는 환자였습니다.

병실은 아주 작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파커는 오후에 한 시간씩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 척추에서 분비물을 받아내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마침 그는 침대가 창가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 앉을 때마다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었죠. 그러나 빈센트는 하루 종일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처럼 이 두 환자를 찾아오는 가족의 발길도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창가의 파커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치료를 받으며 바깥을 내다보았고 두 환자는 고통이 잠시 멎을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파커에게 빈센트가 물었습니다. "거기 밖에 뭐가 보이나?" 파커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이나 화창하네.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꼬마들이 놀고 있어. 호수에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고, 그 옆으로 귀여운 오리들이 줄지어 가는군." "나도 일어나 바깥을 볼 수 있다면 좋겠어!" "자네는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야. 일어나 앉게 될 거고, 몸을 일으켜 창밖도 보게 될 거야." 빈센트는 파커가 이 모든 풍경을 설명해 줄 때마다 즐겁게 들었습니다. 덕분에 빈센트의 상태도 눈에 띄게 호전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파커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수명을 다한 것이죠.

텅 빈 병실에 혼자 남겨진 빈센트는 간호사를 불러 부탁을 했습니다. 자신의 침대를 파커가 있던 창가로 옮겨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는 기꺼이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창가로 자리를 옮긴 그는 기적처럼 몸을 일으켜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창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맞은편 건물의 '회색 벽'만 가로 막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해리 부시먼이 쓴 단편 '창가의 사람'의 줄거리입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고 말했듯이 이 작품은 삶 속에 '희망'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를 조명한 듯 합니다. 개인 적으로 저는 이 작품 속 인물 중 파커를 주목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고,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과 가치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현대인들은 큰 집과 고급 차, 높은 지위나 고액 연봉자를 부러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눈에 화려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들은 잠시 지나갈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움켜쥐고자 서로 물고 뜯고 할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이들은 믿음으로 거룩한 길을 걸어갑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곧 3월, 봄이 오겠지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수난의 길을 묵상하며 영원한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겨우내 굳게 닫혔던 창문을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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