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한 예수님의 요동치는 선교사들

[ 땅끝에서온편지 ] <6>에큐메니칼 선교

이희운 선교사
2016년 02월 22일(월) 19:10

2015년 12월 초순에, 예수제자 도마선교사의 순교지이며, 현대자동차의 도시인 남인도의 첸나이에서 110년만의 폭우로 인해 280여 명의 사망자와 2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여러 이유로 인해 그저 기도만 했음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2004년 12월 성탄절의 쓰나미로 인하여 남인도의 타밀나두 주에서 수 천명이 사망했던 사건이 오버랩된다. 당시 총회 사회부에서 CSI교단(남인도교회)을 통하여 긴급지원을 하려 했으나 서로의 이해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준비했던 긴급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서로 아쉬움만 남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필자는 얼마 전 여러 선교사들과 함께, 인도에 온 지 8년여 만에 교회를 건축하여 헌당(광주소망교회)하는 우상식 선교사의 교회 헌당식에 참여했다. 머릿돌을 읽으며 오열하는 그의 기도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같은 애통함을 가지고서, 같은 현지인 교회개척 등을 통하여 벵갈루루에서 선교하는 가운데, 파도 위에서 뛰노는 나룻배처럼 요동치는 8년 여의 세월 만에 '만물의 충만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의 헌당식에서 가슴 속에 쌓여왔던 설움과 분노와 절망과 슬픔 등이 오열하는 기도 가운데 많이 녹아 내렸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후련함에 그저 "할렐루야"를 외쳤다.
 
우리 총회(통합)의 선교정책은 에큐메니칼 선교정책이다. 통전적인 협력선교라 말할 수 있겠다. 이에 반해 일반적인 선교를 에반젤리칼 선교 또는 복음주의 선교라고 한다. 일방적인 단독선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시대와 눈높이에 따라서는 우리 총회선교부의 선교정책이 더 어렵고 더 장기적이며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선교열매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인도에서의 필자의 경험의 산물이다. '대기만성'이랄까? 거짓의 아비인 사탄을 섬기는 수 만의 우상숭배, 탐욕과 거짓과의 싸움터이다. 많은 외국인선교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인도인과 선교사들의 거짓과 속임, 배신과 불신, 그리고 절망과 회복을 겪는다. 기원전부터 21세기 인도의 카스트ㆍ맘모니즘 문화의 악순환의 영향 때문이라 본다.
 
행정적으로는 은퇴하였으나 인도선교 30년이 넘어서도, 70세를 넘겼어도, 실질적으로 은퇴하지 못하고 있는 선배 선교사님들, 인도의 현지교단, 또는 개인목회자들과 협력선교를 하면서 지치고 실망하고 배신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던 우리 한국선교사들의 경험들을 산고로서 겪어야만 하는가 보다. 복음을 위해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세우는 가운데 '돈, 명예, 권력'의 무한 소유욕이 발동하여 협력선교를 망가뜨리곤 해왔던 것이다. 필자 역시 이 글을 쓰는 순간마다 영광의 승리와 함께 쓰라린 실패의 순간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성공적인 삐냐, 얼수르, 넬라망갈라, 아쌈, 호수르의 선교사역들과 실패처럼 여겨지는 소나가나할리, 다반게레, 마두기리, 바다미의 선교사역들이 비교된다. 현지인 동역자들과 또는 선교사들간에, 심지어 후원교회와 후원자와의 관계에서 요동치는 우리의 죄성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절친한 프렘(Prem)목사와의 대화 중에 필자가 "인도목회자들은 카스트문화에 물들어 있다"고 하니 "한국선교사들은 비즈니스 마인드에 물들어 있다"며 맞받아친다.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선교사로서 인도현지인 동역자를 대하는 나의 자세, 그리고 한국후원단체나 교회에서 나를 대하는 자세가 대체로 그러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성령 권능의 증인이 되어 함께 눈물로써 씨를 뿌리는 헌신이 주님의 시간에 따라 30, 60, 100, 1000배의 생명의 구원을 인도에 가져오고 있다. 회개와 용서, 감사로서… . "나남 회개! 남나 용서! 자족 감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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