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포기할 수 없다

[ 땅끝에서온편지 ] <4>싸우며 성숙하는 사역

이희운 선교사
2016년 02월 17일(수) 09:59

 '달릿 천민들이 복음을 통해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들고 예수님처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었다.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처럼 말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복잡한 해명은 거짓이다. 필자는 해병대 하사관 출신으로서 십자가 상륙작전을 말씀 기도 순종의 전술로 실천하려고 한다. 필자의 이메일 아이디가 'lordfighters'인 것은 인도의 수많은 우상숭배를 쳐부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인도에 이사오기 직 벵갈루루의 프렘 목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달릿 천민들이 사는 집을 임대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실제로 벵갈루루에 도착해 그들의 집을 둘러보니 아직 우리 가족이 적응하기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 2개의 좀더 나은 집을 임대했다. 대신 따로 기회를 만들어 천막집에서 하룻밤, 벽돌집에서 하룻밤, 그리고 당시 7세였던 딸 드보라와 함께 또 다른 천막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밤새 빈대에 물려가며 고생한 뒤, 월 1회 슬럼 취침계획도 중단하게 됐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요즘도 그들의 슬럼 천막집들을 자주 방문해 그들의 삶을 살펴본다. 걷기운동 겸 아침마다 목에 작은 나무십자가를 걸고서, 반경 1km 내에 있는 10여 군데에 흩어져있는 100여 채의 천막 주민들과 200여 채의 고향을 떠나 온 건축 노동자들의 숙소들을 돌아보며 기도한다. 오늘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교회도 기독교인도 거의 없는 삐냐 공단 빈민지역에서 시작한 삐냐교회의 초창기, 세 번의 현지인 가정교회을 거쳐 네번째 예배 처소로 이사했다. 달릿 출신의 청년 전도사 솔로몬을 소개받아 그의 이름으로 작은 집을 임대해 20여 명의 빈민 남녀 청소년을 대상으로 40일 영어교실과 함께 주일예배를 시작했다. 빵과 커피를 간식으로 제공하는 주일예배에는 또 다른 20여 명의 빈민들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외국인과 많은 사람들의 출입을 수상히 여기는 주변 사람들과 예배처소의 협소함으로 인해, 3배 정도 넓은 5번째 예배처소로 이전하게 됐다. 곧이어 슬럼 빈민들과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주일예배에 50명의 어른들이 참석했고, 여름성경학교에도 50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빠른 부흥을 사탄이 시기했나 보다. 월세와 10개월의 보증금으로 임대했던 전 예배처소에서 보증금 문제 터졌다. 간첩처럼 위장선교를 하는 외국인인 필자가 직접 나설 수 없어 솔로몬 전도사를 통해 건물주와 임대료 거래를 했는데, 보증금은 돌아오지 않고 서로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둘 다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있으리라.
 
설상가상으로 거리의 깡패들이 밤에 새 예배처소에 몰려와 솔로몬 목사를 연일 협박하다가, 문을 도끼로 부수기까지 했다. 급기야는 부활절 세 명의 세례식과 성찬식을 마지막으로 경찰에 신고돼 교회는 강제로 폐쇄당했다. 포기할 수 없기에 8개월 간 들판과 차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이희운 선교사/총회 파송 인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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