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 땅끝에서온편지 ] <3> 첫 교회 개척

이희운 선교사
2016년 02월 17일(수) 09:57

학창시절에 인도는 네 계층의 계급사회로 이뤄져있다고 배웠다. 72%의 아리안족을 중심으로 상층인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가 분포하고, 25%의 드라비다족을 중심으로 하층인 수드라 계층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인도에 살아보니 또 하나의 천민 계급이 있었다. 남인도를 중심으로 인도 전체에 흩어져 있는 드라비다족, 보통 사람들보다 더 까맣고 작은 종족인 '달릿'이란 천민이었다. 수드라 계급과 중첩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드라는 중간 계급에 해당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하층인 달릿 천민들이 인도의 3000만 기독교인 중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수천 년의 인도 역사 속에서 피지배층으로 전락한 이들은 지배 계급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다가, AD 72년 남인도의 첸나이에서 도마의 순교 이후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폭넓게 소개된 예수 그리스도안를 영접하고 진정한 사랑과 평등을 배우게 됐다. 서양 선교사들이 시작한 교회, 학교, 병원, 고아원 등 다양한 선교적 지원이 사랑에 굶주린 달릿 천민들의 절망적인 삶에 희망을 준 것이다. 인도 독립 이후 해외 선교사 추방정책과 가난으로 인해 정체돼 있던 기독교는, 2000년대에 들어와 기독교인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 기독교는 힌두교와 카스트제의 핍박을 이겨내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는 남인도 5%, 북인도 2% 내외로 아직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한 상황이다.
 
지난 2004년 7월 19일 총회파송 선교사로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인도 벵갈루루공항에 남인도교단 소속 프라사드 목사와 프렘 목사가 우리 가족을 마중을 나왔다. 한 주 이상 인도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며 프라사드 목사의 집에서 지내다가, 2칸의 방이 있는 집에 둥지를 틀게 됐다. 6개월의 여행비자를 스리랑카에서 갱신한 후, 전에 우리가 한국에서 섬기던 전주나실교회와 전주근로자선교상담소를 탐방했던 달릿 출신 랙스만 씨의 도움을 받아 벵갈루루의 빈민지역인 삐냐에서 교회 개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40일 동안 매일 한 한국인 청년의 스쿠터를 얻어 타고 새벽 5시에 출발해 한 시간 거리의 공단 빈민지역을 정탐하고, 한적한 거리에서 은밀히 기도를 드리면서 예배드릴 장소를 물색했다. 주택가 구석구석에선 빈민들이 생활하는 천막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여호수아와 갈렙 등이 40일 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듯 골목골목을 정탐하면서 교회 개척을 준비했다. 당시 두 현지인 목사는 그 지역이 우범지대라며 개척을 극구 반대했었다. 하지만 난 '예수님처럼 말씀, 기도, 실천으로 기적을 맛보겠다'고 생각하며, 한 천주교인 달릿의 작은 집에서 삐냐 사역을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다!' 한국에서 처럼 단순, 무식, 과격하게 일단 문을 열면 서서히 다듬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2005년 3월 가정교회로 시작한 삐냐 시온폴트(Zionfort)교회는 8차례의 이전, 강제 폐쇄, 현지인 동역자들과 갈등 등 우여곡절을 이겨내며 현재 300여 명이 출석하는 준자립 교회로 성장했다.

이희운 선교사/총회 파송 인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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