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의 명예

[ 논단 ]

고형진 목사
2016년 02월 16일(화) 10:55

고형진 목사
강남동산교회

한국교회 내부가 당면한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갈등관계이며 이 갈등관계는 장로와 목사 간의 갈등, 그리고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의 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장로와 목사 간의 갈등은 목회를 진행하면서 서로 조율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는 반면,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의 갈등은 교회의 분열을 초래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신뢰성을 잃고 공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이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를 올바르게 진단하고 설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총회법에 따르면 '원로목사는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을 목사로서 시무하던 목사가 노회(폐회 중에는 정치부와 임원회)에 은퇴 청원을 할 때나 은퇴 후 교회가 그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추대한 목사다. 원로목사는 당회의 결의와 공동의회에서 투표하여 노회(폐회 중에는 정치부와 임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 예우는 지 교회에의 형편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교회가 그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원로목사 제도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교회는 원로목사의 명예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원로목사도 자신의 명예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입장에서 원로목사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원로목사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원로목사를 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원로목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다반사이다. 

한편, 원로목사의 입장에서는 원로목사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 교회에서 20년간 교회를 섬겼다고 한다면 교회와 교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섬겼겠는가? 그런 사역을 뒤로 하고 은퇴해 원로목사가 됐다면 이제 교회나 교인을 사랑하는 방법,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담임목사로서 가졌던 태도나 마음가짐을 그대로 표출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교회와 교인,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지혜로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즉 후임목사가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에서 겸손과 인격을 통해 인수를 잘 해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원로목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필자가 매우 잘 알고 있는 원로목사 한 분이 계신다. 그 분으로부터 자신이 개척하고 부흥시키고 은퇴한 교회 앞을 지나면서도 후임목사가 불편할까봐 그냥 지나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정년인 70세가 되기 전 조기은퇴했고, 은퇴 후에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후임목사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목회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함이었다. 그 분은 후임목사를 만날 때마다 "당신의 목회이니까 소신껏 하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가끔 설교를 부탁드려도 극구 사양하고 교회에는 1년에 한번 출석한다. 1년에 한 두 차례 현 교역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수고했다고 치하하고 격려하며, 혹이라도 후임목사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리면 위로 전화를 빠뜨리지 않는다. 당회원들에게는 늘 "담임목사를 잘 섬기라"는 말씀도 하신다. 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하면 함께 했던 교인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외딴 곳에 살면서 외로움을 느낄 만도 하지만 혹여 작은 분파라도 생기지 않을까 염려해 교인들과 개별적으로 만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새로이 색소폰과 검도를 배우며 심신의 건강관리를 해나가고 있다. 후임목사에게 절대로 어떻게 목회하라고 가르치시는 법이 없고 다만 격려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주실 뿐이다. 이런 그분의 모습은 후임목사는 물론 모든 교인들에게 도전과 자극을 통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원로목사를 어느 교인들이, 어느 후임목사가 존경하지 않겠는가? 이런 교회에 갈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많은 목회자가 20년 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시무 기간 동안 교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퇴하면서 실망스러운 뒷모습을 남기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훌륭하게 목회를 했다 하더라도 마지막 모습이 부끄럽다면 그 원로목사는 부정적 이미지로 기억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원로목사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와의 갈등을 야기해 교회에 피해를 입히게 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된다.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진짜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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