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회개가 먼저다 (4)교회, 빛과 소금의 역할은 어디로?

[ 특집 ] "하나님 외에 다른 신 두지 말라"

강영안 박사
2016년 01월 25일(월) 12:30

강영안 장로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ㆍ고신대학교 이사장

2004년 한국갤럽의 한국 종교 실태 조사를 보면 한국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 개신교 신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정신적 문제에 만족을 준다'라고 답한 개신교 신자는 59.2%였고, 천주교 신자는 44.8%, 불교 신자는 38.1%였다. 종교인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개신교 신자 76.1%, 천주교 신자 67.4%, 불교 신자 58%가 '만족한다'고 답하였다. 자신의 신앙심이 깊다고 스스로 평가한 개신교 신자는 50.5%, 천주교 신자는 26.8%, 불교 신자는 19.6%였다. 만족도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훨씬 앞서고, 천주교 신자들이 뒤따르고, 불교 신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바른교회아카데미,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3년 연속 한국 종교인들의 신뢰도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순서가 다르다. 2009년 조사를 따르면 가장 신뢰 받는 종교는 천주교(35.27%), 불교(31.1%), 개신교(18%) 순이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하지 않고 개신교만 두고 '개신교를 신뢰하느냐?'고 물은 물음에 대해서는 '신뢰한다'는 답이 18.4%,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이 48.3%였다. 종교에 대한 호감도를 보면 불교가 31.5%, 천주교가 29.8%, 개신교가 20.6%였다.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3년 내내 18%를 넘지 않았다.

여론 조사는 대상 선정이나 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하다. 그런데 보라. 만족도 조사는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왔지만 신뢰도에서는 처참할 정도로 낮게 나온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자기들끼리는 좋은 데 남들이 볼 때는 아니라는 뜻'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금 개신교는 바깥사람들에게는 '당신들의 천국'일뿐, 갈망할만한 종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자. 개신교와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불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2009년 설문에는 개신교에 대해서 요구하고 싶은 사항을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 그 가운데 11.5%가 '재정 사용의 투명성'을 요구하였다. 25.5%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42%가 '교인과 지도자의 언행일치'를 요구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교회의 재정 사용이 투명하지 않고 남의 종교에 대해서 무례하고 신앙 따로, 삶 따로 사는 개신교 지도자와 신자들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한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는가? 목사나 장로, 교인들이 중생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답해야 하겠는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야 하겠는가? 목사와 장로들이 정말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야 하겠는가?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 7: 20)"고 말씀하셨다.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해도,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해도, 아무리 자신의 신앙에 만족해도,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삶 속에서 맺히는 열매가 없다면 결국은 거짓이라는 판단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듣는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다.

물어 보자. 오늘 한국교회가 이렇게 신뢰를 잃은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분들은 언론 때문이라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교회의 부정적인 면이 언론에 알려질 일을 저지르는 분들은 누구인가? 주로 목사와 장로들이다. 목사와 장로들이 말씀대로, 자신들이 가르치는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고, 사람들이 널리 알게 되니, 신뢰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일반 평신도들도 문제를 일으키지만 대개 목사와 장로가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회개할 사람들은 목사와 장로들이고 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이른바 '교회의 교사'라고 자처하는 신학 교수들이다.

그런데 회개라면 지금까지 잘못된 것들,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할 텐데, 무엇을 회개하고 어디로 방향을 돌려야 하겠는가? 산상설교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라도 읽고 이 말씀에 우리 자신을 내어 놓고 우리 모습을 바라보아도, 회개의 제목은 분명하게 제시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산상설교에는 십계명 가운데 여러 계명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짓는 죄가 다 들어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1계명이다.

다시 물어 보자.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나 외에 너희에게 다른 신을 두지 말지어다'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외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알 파나이'는 '하나님 얼굴 앞에, 하나님 얼굴 곁에, 하나님 얼굴과 나란히'란 뜻이다. 1계명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 곁에, 하나님 나란히, 우상을 앉혀 두고 섬기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어느 사이 하나님은 가만히 두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곁에, 하나님과 나란히 수많은 우상들을 세웠다. 돈, 학위, 학벌, 지위, 자식, 가족, 회사, 국가, 건강, 미모, 성공, 심지어 목사나 장로, 교회, 교단,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나란히 서 있는 우상이 돼버렸다.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 이유를 여기서 찾지 않고 어디서 따로 찾을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원수까지 포함해서) 이웃을 참되게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우상들을 상대화할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곁에 있는 자리에서 끌어내려 우리 무릎 아래 굴복시킬 수 있다. 이 때 비로소 지금까지 섬기던 물질이나 건강, 지식이나 지위, 가족이나 국가, 심지어 교회와 교단마저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참으로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는 일은 두 가지이다. 

첫째, 오늘 교회가 세상 것들을 추구하고 그것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엄청나게 열심히 섬기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돈이나 지식 등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것들을 '목적'으로 삼아 그것들을 즐기느라 막상 예배하고, 즐거워하고, 누리고, 삶 속에서 그로 인해 기뻐해야 할 삼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삼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 분을 알고, 믿고, 그 분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 분으로 인해 기뻐하고 소망 중에 사는 삶이 가장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삶이 되는 길밖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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