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족(洗足)을 읽다

[ 문화 ] 시머무는자리/조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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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8일(월) 16:18

세족(洗足)을 읽다

얼굴 본 적 없는 미소년이
여린 새순 같은 무릎을 낮추고
허릴 굽혀 발을 씻긴다
얼굴 가득 살얼음이
고산의 흘픈 흔적처럼 거무스레 스며 있다
소년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수줍음이 얼굴 가득 일렁인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찰방찰방 물과 물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여와 잠시
굳어 버리곤 하는 공기를 희석시킬 뿐이다
천장 가득 흐릿한 조명이 지리한 듯 눈을 껌뻑인다
불빛 아래 물속,
꼼지락거리는 손놀림이
등 붉은 물고기 꼬리지느러밀 닮았다고 문득, 생각한다
바다와 어류를 본 적 없는 소년은
어디에서 물고기의 몸놀림을 대대로 답습한 것일까
먼 옛날 유대 땅,
무릎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긴 눈 깊은 한 사내를 떠올린다
생각 없이 누운 나와의 괴리는 얼마쯤일까

너무 멀리 밀려와 버린,
너무 많이 잊어버리고 살아온 내가
고산의 살얼음처럼 뒤척인 밤이었다

조수일
제10회 동서문학 시 부문 은상 수상
제1회 송수권 문학상 장려(신인상) 수상
광주풍암중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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