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 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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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4일(목) 13:09

월-믿음 관리
본문 : 눅 22:31~34
찬송 : 545장

올림픽 마라톤 메달리스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고된 훈련을 하는 가운데 차도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차도로 뛰어든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고된 훈련을 이겨내었기 때문에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신앙생활도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많은 유혹들을 떨치고 끝까지 인내하고 달려 완주해야 한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대속하여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사하심을 믿는 믿음과 이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자가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믿음을 말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시작과 끝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초지일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소홀히 생각하기 쉽다.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예수님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본문에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믿음을 잃지 않도록'(공동번역),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표준새번역), '믿음이 사라지지 않도록'(현대인의 성경)으로 되어 있다. 믿음을 관리하지 않으면 믿음이 꺾이고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첫째,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때로 사람을 바라보거나, 환경을 바라보거나, 실패한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다. 바로 그 때 주님을 바라보면 믿음을 잃지 않는다. 둘째, 기도하는 것이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다. 기도를 쉬는 것은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셋째, 믿음의 증거를 확인하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나의 신앙생활에 믿음의 역사가 있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제화 시키는 힘이다. 오늘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허공을 치고 있는가?
 
끝으로 믿음은 삶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속지 말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한 해도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성기 목사
가평교회

화-관계 치유
본문 : 왕하 2:19~22
찬송 : 455장

유명한 크리스찬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 안에 넣어 보았다. 뜻밖에도 그들은 내 기대를 뛰어 넘어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번에는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 안에 집어넣어 보았다. 그들은 약간의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그들도 더불어 잘 어울릴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장로교인과 감리교인, 침례교인을 한 우리 안에 함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그들은 결코 잘 지낼 수가 없었다." 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것이다.
 
"나를 혼자 내버려 두세요"라는 것은 관계의 심각성을 말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난 이제 더 이상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아", "이제 다시는 절대로 사람을 깊이 사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물리적으로 물러난다'(직무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만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정서적으로 물러난다'(혼자만의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산다), '정서를 둔감하게 만든다'(상호작용은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관계가 단절되면 주로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원인은 이렇다. 나를 이해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람 앞에서 민망한 행동을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소음과 자극을 견디기 어럽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과 비슷한 사람은 누구든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관심을 요구하다보니 오히려 사람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엘리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물을 고치는 놀라운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들도 엘리사와 같은 관계의 능력을 가지면 좋겠다. 관계를 돈독히 하려면, 먼저 베풀어야 한다. 베푸는 사람은 사람을 얻는다. 그것이 소중한 자산이 된다. 관계는 양보와 타협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좋은 관계를 위해서 '종의 마음'으로 섬기라고 하신다.
 
관계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의 산물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믿음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관계는 중요하지만 넓고 오랜 여행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계속적인 거룩한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한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모든 관계는 긴 여행이다. 예수님의 '심고 거둠의 법칙'이 중요하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관계를 치유하여 주십시오. 많은 관계의 단절을 통해서 아픔과 상처로 살아갑니다. 관계의 능력을 주셔서 풀어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오 목사
창원선교교회

수-예수님의 식탁영성
본문 : 막 14:3~9
찬송 : 211장

지식정보사회가 초래한 소외와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식탁에서부터 극복해낼 수 있도록 본문을 통해 주님의 영성을 깊이 묵상해보자.
 
예수님 시대의 식탁문화는 바리새인, 서기관, 세리와 죄인으로 사회계층을 구분하여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다. 하지만 세리 마태의 집에 초대받으신 주님은 자신을 따르던 세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함으로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부터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는 비방과 야유를 받으신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답하신다.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으시고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자 바리새인이 이를 보고 이상히 여길 때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살인, 도둑질, 거짓증언, 비방 등이 사람을 더럽게 하고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삭개오와 식탁에서의 만남을 통해 변화된 삭개오의 결단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 식탁교제 중에는 그 마을의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성이 주님의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죄인의 식탁 서비스를 허용하는 주님을 몰상식자로 오해하는 시몬과 식객들을 감화시키고 그 여성의 행함이 수반된 신앙을 격려하며 사죄의 은총을 선포하셨다.
 
공생애의 시작과 함께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주님께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명하여 배고픔을 해결해라"는 마귀의 유혹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다. 육신의 양식은 굶주려도 영과 생명의 양식인 말씀으로 사는 것을 확증하심으로써, 말씀으로 식욕의 유혹에서 승리하셨다.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주셔서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 먹거리, 입을거리 등이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잘 아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면 의식주의 복은 덤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일상의 식탁에서 주님의 영성은 모든 사람을 영생으로 인도했다.
 
오늘의 기도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별없이 모두 행복한 식탁의 참여자로 부르시는 주님의 영성을 우리에게 부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좋은 습관을 가진 좋은 성도
본문 : 눅 4:16~19
찬송 : 208장

우리 인생에 있어서 습관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그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오늘날 공중에 권세를 잡은 원수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못한 것을 알고 땅으로 내어 쫓겨서 밤낮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죽이고 매장시키기 위해서 참소하는 일이다. 이 참소란 있는 말, 없는 말을 지어내서 중상모략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매장시키고 교인들을 이간시키는 무시무시한 마귀가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귀 이름의 뜻은 '비방자, 중상자'이다. 마귀란 본래 이름이 중상모략하고 비방하는 자이다. 그래 마귀가 들어오면 교회를 비방하고 중상모략한다. 사탄이란 '반역자, 대적자'라는 뜻이다. 반역하고, 대적하고, 배신, 배반하는 자란 뜻이다.
 
특별히 새해에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특별히 지난 날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습관을 버리고, 바르게 생활할 때에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보호하시고 환란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온 믿음의 가족이 썩어져가는 구습과 악습을 벗어버리자. 그리고 복된 습관을 갖자.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교회에 가는 습관이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가는 습관은 가장 귀한 습관이다. 어떤 수지맞는 일이 있어도 교회에 나와야 한다. 어떤 중요한 사람이 만나자고 해도 뿌리쳐야 하고, 어떤 재미있는 오락 거리가 있어도 가선 안된다. 교회에 나가는 습관, 이것은 그 사람, 그 가정, 그 나라가 복 받는 습관이다.
 
창세기 2장 3절에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결코 육신의 소욕대로 써서는 안 되는 날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교회의 주인인데도, 안식일의 주인인데도 오늘의 교회인 회당에 들어가시는 것이 규례요, 법칙이요, 생활 습관이었다.
 
예수님은 꼭 교회에 나갔다. 당시 교회가 말할 수 없이 부패했다. 그런데도 교회를 탓하지 않으시고 습관적으로 꼭 가셨다. 주일성수하는 신앙은 기분 나쁘면 안 나가고, 기분 좋으면 나가고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오늘 우리도 규례를 따라, 습관적으로 꼭 교회에 나가야 한다.
 
올 한 해 우리 온 가족도 더욱이 주일이면 쉬고 복 받는 날, 일하고 손해 보는 날, 예배드리며 축복받은 날인 것을 믿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법칙을 어기지 않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은 주일을 성수하는 좋은 습관을 가진 좋은 성도가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금-변함없는 주의 은혜로
본문 : 수 1:1~9
찬송 : 303장

새로움은 기대와 설레임이다. 그러나 두렵고 떨림도 동반한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넓고 광활한 땅을 줄 것이라고 약속을 하였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얼마나 기대가 되고 설레이겠는가? 여호수아는 평생을 모세의 수종자로 살았다. 그런데 이제 자신에게 그 직임이 주어졌다.
 
새해가 되었다. 앞으로 기대하는 바도 크지만 전개될 일들을 생각하면 두렵고 떨림이 앞선다. 어떻게 하면 강하고 담대하게 수없이 만나게 될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변함없는 주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은혜인가?
 
첫째, 에벤에셀의 은혜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했던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행하신다. 우리는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 '여기까지 인도 하신 하나님'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다. 영원히 그의 구원의 역사는 기억되어져야 한다. 역사 속에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셨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임을 기억하자.
 
둘째, 임마누엘의 은혜이다.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모세와 함께했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셨다. 그리고 오늘 나와 함께 하신다. 그분께만 소망을 두고 의지하며 나아가면 두렴을 떨쳐버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행할 수가 있다.
 
셋째, 여호와 이레의 은혜이다.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이삭을 번제로 하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해 제단 위에 놓고 잡으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말렸다. 눈을 들어 살펴보니 숫양이 수풀에 있었다. 이 숫양을 잡아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여호와 이레이다. 시험하는 동시에 준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모세의 갑작스런 죽음은 큰 실망과 낙심이다. 또한 갑작스런 여호수아의 부름은 기회였지만 감당하기 힘든 직임이었다. 그럼에도 약속의 땅을 준비해 두셨다. 그리고 이끄신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은 변함이 없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찬양하며 간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태언 목사
창매교회

토-하나님의 자녀
본문 : 빌 2:12~18
찬송 : 461장]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쉽지 않다. 더욱이 요즘 교회의 추한 모습이 세상의 뉴스거리가 되면서 반 기독교 정서가 많아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위축되지 말라. 지금까지 고난 없이, 피의 대가 없이 교회가 교회된 적이 있었던가! 교회는 고난 가운데서도 줄곧 성장해왔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역경 가운데서 빛을 발해왔다.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보자.
 
먼저, 하나님의 자녀는 감독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 잘 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있을 때는 공부하는 척 해도 없을 때는 논다. 그러나 이것은 어렸을 때의 일이고, 적어도 대학생이 되면 부모가 있건 없건 알아서 하는 것이 옳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참 모습은 성황의 모습이다. 은혜로 구원받고 새사람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받았음과 새사람이 되었음에 대한 삶의 모습이 뒤따라야한다. 본문에서는 성령이 내재하셔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 그리고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인생이 많고, 자신들의 행위가 옳고 그름에 대해 무지하리만큼 어둠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생활로 보여줘야 한다. 본문에서처럼 흠 없고 순전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어둠의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역할이 우리의 몫이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함께 기뻐하도록 해야 한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부모가 어떤 수고와 희생도 감수하듯 사도 바울도 빌립보교회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목회자도 성도들의 신앙을 키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두운 이 세상을 치유하고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한 세상이 기뻐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축복의 자녀답게 성화의 삶으로 보답하시기를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영현 목사
제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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