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협의 계승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1월 13일(수) 09:52

1990년 1월부터 준비돼 1991년 5월 27일에 발족된 작은자복지선교회는 한아협을 계승한 기구가 됐다. 황 총무는 '작은자복지선교 20년사'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작은자복지선교회를 설명했다. 

"독일 선교후원금으로 시작된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는 교회가 운영하는 아동복지 사업으로 전개되다가, 이름 모를 외국인들의 애정어린 사랑에 힘입어 작은자운동으로 확산 전개됐고, 1992년에는 '작은자복지선교회'를 발족시켰다. 이는 한국의 사회선교사업이 홀로 서기를 선언하는 시기가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한아협 총회 또는 임원회를 통한 논의나 타교단 관계자들의 참여는 없었다. 

작은자복지선교회가 한아협의 계승기구라는 황 총무의 정체성 확인 후 작은자복지선교회 이사회와 임원회에서는 KNH 관련 업무나 그동안 한아협에서 논의됐던 각종 사업들이 논의됐다. 그리고 한국기독교회관 신축건물에 새로운 사무실도 마련됐다. 

작은자운동이나 작은자복지선교회에 대한 생각들은 '선교와 사회복지' 여기 저기에 많이 나타나 있고, 그 예가 되는 작은자들의 이야기도 수없이 많다. 

황화자 총무는 1986년 '선교와 사회복지' 창간호에서 '지극히 작은자 운동'이란 글을 통해 처음 '작은자운동'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 글에서 황 총무는 "우리 자신들의 아동복지 프로그램을 통한 선교적 자세는 어떠하였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 답으로 "이제는 지난날의 모습을 재점검하면서 지극히 작은자를 돕는 운동(To The Leasts Movement)으로서 한아협 사업이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재정립해야 할 때가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또 작은자를 '경제적인 이유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라고 정의했다. 그러므로 이 창간호에서 말하는 작은자 운동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를 찾아 돕는 것이었다. 

황 총무는 또 1987년 사업 방향 중 하나로 작은자운동을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현재 진행 중인 작은자운동을 국내외적으로 전개해 작은자들을 돕고자 하는 귀한 하나님의 봉사자들을 찾고 동시에 소리를 외쳐 볼 수도 없는 형편에 처한 지극히 작은자들을 찾는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작은자란 어떤 도움도 없는,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지극히 가난한 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리고 작은자운동은 이런 사람들을 찾아서 돕는 것으로, 국내뿐 아니라 점차적으로 국외에서도 전개돼야 할 운동이었다. 이와 함께 1987년 작은자후원회가 발족됐고 국내외 모금활동이 전개됐으며 국내외 작은자들과 시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선교와 사회복지'에는 '작은자 운동 소개 시리즈'라는 란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제1대 작은자후원회 백옥숙 회장은 "우리들이 펼치는 작은자운동도 그리스도의 삶을 닮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보았다. 작은자복지선교회 창립 준비위원이면서 동시에 한아협 운영위원이었던 박창빈 목사는 작은자 운동을 "이웃사랑, 이 사회의 작은빛 운동, 이삭줍기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므로 작은자복지선교회가 창립되기 전 작은자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말하는 작은자운동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신앙심에서 시작됐고, 신앙심에 바탕을 둔 일이다. 둘째,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마지막 때까지 지속될 일이다. 셋째, 가장 작은 자,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장 작은 자를 찾아서 돕는 일이었다.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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