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 11~16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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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8일(금) 10:27

월-예수님의 영성
본문 : 요 4:3~42
찬송 : 436장

40대 맞벌이 부부가 두 딸과 함께 신정 휴가차 우리 교회를 잠시 방문했다. 이들은 도시생활이 매우 각박하다며 인간성 상실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오랜 역사 속의 갈등과 인종차별로 상종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유대인 남성과 사마리아인 여성 간의 대화나 만남은 그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편견과 곡해와 가치관을 초월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행복한 삶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영성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의 각박한 마음 밭에 생수가 되어 흘러 넘쳐나게 되기를 바란다.
 
사마리아의 수가마을 야곱의 우물 곁에 예수님께서 선교여행 중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그대로 앉으신 시점은 제자들이 점심 준비를 위해 수가마을로 들어갔고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한 낮이다. 예수님은 몰래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성의 목마름과 불행의 회복을 위한 대화의 접촉점으로 물을 선택신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선생님! 그런 물이 저에게 필요 합니다 저는 심히 목마른 사람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남편이 없습니다." "네게 물을 달라고 말하는 내가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 그리스도다!"
 
사람 만나기를 피하던 여성이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 담대하게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메시야를 당신들도 와서 만나보라고 권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와서 사람대접 못 받고 살아가는 소외의 땅 사마리아지역을 찾아주신 예수님을 환영하게 되었고 2일 동안 함께 유숙하면서 말씀을 듣고 참으로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신줄 알고 믿게 된 놀라운 변화의 선교현장 기록이다.
 
제자들이 점심을 사가지고 와서 선생님께 잡수소서 권했으나 예수님은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안 먹어도 배부르고 행복하다 사마리아인들이 내말을 듣고 믿어 영생과 행복을 누리게 되니 내 기쁨이 충만하구나. 너희들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대답하신다.
 
유대지방과 사마리아와 갈릴리지역을 두루 찾아 다니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일이 예수님의 식사라고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바로 이것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늘의 기도
 
관계를 회복시켜 행복한 삶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영성을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에 솟아나는 샘물처럼 부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맑음 목사
특리교회

화-여호와께 맡기라
본문 : 잠 16:1~3
찬송 : 369장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2016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행사도 맡기고, 마음도 맡기고, 운명도 맡기라고.
 
맡기라는 말은 소극적으로 볼 때 '자기 자신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하던 일, 계획, 능력, 지식 …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다 포기하고 손을 들고,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그리고 '그에게 위탁하라'는 말씀이다.
 
책임을 많이 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하다.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나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이제 내 책임이 아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 영이 언제나 자유롭다. 걱정이 없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으니까 이젠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이다. 내게는 아무 책임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은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2절 말씀에 보면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그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자기가 보기엔 자신이 깨끗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그 의를 하나님께 바쳐 버리라. 자기 의를 하나님께 의탁해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총을 베푸시지 않으면, 조그마한 일에도 바로 살 수가 없다. 내 잣대를 놓고 남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 의를 하나님 앞에 맡겨 버리고 "당신만이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느니라. 너희가 갚으려고 하지 말라." 원수, 나를 괴롭히는 상황,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라. 기쁨은 상대방을 먼저 기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야 내가 기쁜 것입니다. 내 기쁨을 하나님께 맡겨버리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온 정력을 쏟으면, 마침내 하나님의 기쁨에 의해서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웃을 기쁘게 해 보라. 그러면 결국은 그 기쁨이 내게 돌아온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새해에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버리자. 이 은혜가 올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복되고 귀한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삼식 목사
매호교회

수-살든지 죽든지
본문 : 빌 1:12~20
찬송 : 549장

사명자는 자신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어차피 주의 일은 주께서 하신다. 주께서는 필요한 사람을 부르셔서 적재적소에 사용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며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도바울의 '살든지 죽든지(20절)'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에스더가 생각나고 룻이 생각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살든지 죽든지는 일사각오 한다는 것인데 과연 사도바울은 무슨 의미로 이 말을 했을까?
 
우선, 살든지 죽든지는 믿음의 과학이다. 바울의 이 고백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후원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투옥된 상황에서 오히려 복음이 널리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고백이 중요하다.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된다"고 고백하자.
 
둘째, 살든지 죽든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20~21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만 된다면 부끄러울 것도 없고, 죽은 것도 유익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바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고, 자신은 지극히 작은 종으로 살아 온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감옥에 몇 번을 드나들어도 괜찮고, 매를 수 없이 맞아도 괜찮고, 미움, 다툼, 시기를 당해도 넉넉히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바울 또한 예수 이름이 존귀하게만 된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살든지 죽든지는 교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교회가 무너지느냐 일어서느냐는 성도들에게 달려있다. 즉, 성도들이 하나가 되느냐 못되느냐의 관계다. 소위 한마음 한 뜻되는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뜻이 나뉠 때 분열되는데 더구나 빌립보 교인들은 주위에 이 교도들과 유대주의자들 같은 대적자들이 있었음에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이겨냈다. 다시 말하면 빌립보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한마음 한 뜻 되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도 있는 것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매우 좋아하지만, 잊지 말 것은 그 은혜 속에는 고난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연단하셔서 더 귀하게 사용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성도들이 살든지 죽든지 주의 일에 힘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살든지 죽든지 우리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높임 받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영현 목사
제원교회

목-변함없는 믿음으로
본문 : 눅 5:1~11
찬송 : 302장

성도의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다가 변화무쌍하듯 시대는 변하고 환경은 바뀔지라도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망망한 큰 은혜의 바다를 준비해 두셨다. 그물을 던지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두셨다. 새해는 누구나 새로운 마음으로 큰 꿈과 계획을 세운다. 어떻게 하면 원대한 꿈과 소망을 이룰 수가 있을까?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은혜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까?
 
첫째,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도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자. 어부들은 고기 잡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장은 삶의 터전이다.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는 사람들은 비록 빈 배로 돌아왔지만 내일을 준비한다. 성도의 삶에 곤고하거나 지치고 힘에 겨운 일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다 주의 크신 은혜였다. 오늘도 주님은 주의 은혜를 물 붓듯이 부으시고 계신다. 또한 앞으로도 지키시고 인도하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을 믿기에 은혜의 바다로 나아갈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은 얕은 물가에서 머물며 파도를 보고 마음이 약하여 못 나아간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자.
 
둘째,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자.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밤이 새도록 수고했으나 잡은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 지나치지 않으시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람 낚는 어부의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푸른 초장과 실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강도 만난 자에게 다가서신다. 좌절과 낙심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사람에게 기쁨으로 거둬들이도록 길이 되어주신 분이시다. 변치않는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자.
 
셋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나아가자.
 
베드로는 수없이 경험했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을 때도 그러했듯이 베드로는 오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물위로 걸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자 무서운 생각이 들 때에 물에 빠져들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살자. 오늘 본문에도 실패했지만 말씀에 이끌린 삶은 풍성히 거둬들이며 주변에도 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내 생각과 경험의 능력보다는 말씀에 의지하며 나아가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변함없는 믿음으로 다시금 힘을 얻게 하시되 주의 은혜와 사랑과 말씀에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태언 목사
창매교회

금-비전 관리
본문 : 잠 29:18
찬송 : 490장

스탠포드 대학의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배우는 것의 89%는 보고 배우는 것이며, 10%는 듣고 배우는 것이고, 1%는 다른 감각으로 느끼고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가 내일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패한 것만 보아온 사람은 늘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공한 것을 보고 자란 사람은 두려움 없이 성공을 위해 달려간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고 나와 있다. '묵시'라는 말은 '계시' 또는 '비전'을 말한다. 사람은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비전이 없으면, 방자히 행하기 때문이다. 방자한 행위는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백성들이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는 모습과 같다. 비전이 없으면, 계시가 없으면, 율법이 없으면 방자히 행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전을 주신다. 특히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다. 새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주신 비전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비전은 무엇인가, 그 비전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요셉에게는 어릴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이 있었다.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하고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자신에게 절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조금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비전은 우리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비전은 무엇인가? 그 비전을 믿음으로 선포하라.
 
비전을 이루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다. 요셉은 그 비전이 이루어지까지 형들에게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노예로 팔렸고, 노예 생활 중 주인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아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집 떠나 팔려온 홀로된 아이, 그러나 요셉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비전대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그 모든 것을 결국 다 이루어 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갈렙은 40세에 받은 말씀을 85세가 되기까지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는 이루어질 것을 믿고 몸과 마음과 실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갈렙은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말한다. 갈렙은 45년 전에 말씀을 통해 주신 비전을 드디어 눈 앞에서 보고 이루게 된다. 비전을 가진 자는 반듯이 이룬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선포하라. 그리고 준비하라. 때가 되면 이루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신 비전을 바로 관리하여 비전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성기 목사
가평교회

토-불안감 치유
본문 : 시 43:1~6
찬송 : 542장

한 환자가 수술대에 누웠다. 의사가 수술준비 하는 것을 보면서 환자는 너무 긴장되어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제가 처음 수술을 하는데요. 너무 긴장돼 죽겠어요!" 그러자, 의사는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이에요!" 불안이라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어떤 일에 걱정이 되어서 늘 마음이 긴장되어 편치 못하고, 초조하여 감정이 압박당하는 상태를 말한다.
 
불안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심리 현상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 불안이 있다는 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직시하면서 인정해야 해결할 수 있다. 마음 속에 불안이 있으면서 "나는 불안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다.
 
폴 틸리히는 "인간은 불안한 존재인데 그 이유는 세 가지 원인 때문이다"라고 했다. 첫째는 '죽음과 자기 생명에 대한 불안'이고, 둘째는 '인생의 무의미함에 대한 불안'이고, 셋째는 '죄 때문에 불안'하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란 인간이 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껴질 때, 나타나는 극히 자연스러운 심리적 현상이며, 하나의 정서라고 보았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불안한 상태에 있는지 심리학자들은 현대를 일컬어서 '불안의 세대'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내 영혼이 불안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오늘 날의 현대인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삶 속에서 너무 많은 일들로 불안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소망을 가질 것을 권면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찬양할 것을 요구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죄와 연관해서 죄책감을 불안과 동일시했다. 기독교 심리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죄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불안의 상황을 스스로 분석해 볼 때, 자신에게 그와 관련된 죄가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다. 죄가 우리 속에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죄를 찾아내서 그 마음의 불안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하는 데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불안의 감정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삶에 다가올 폭풍우를 대비하라. 둘째, 비극과 재앙이 올 때 우리가 무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라. 셋째,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분께 속해 있는지를 기억하라.
 
오늘의 기도
 
불안의 증상이 많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오 목사
창원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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