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꾹꾹 눌러 쓴 성경, "은혜 충만"

[ 문화 ] 서예 필사하는 할아버지 고상우 장로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5년 12월 08일(화) 16:21
   
 

최근 교회마다 '성경필사'를 하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쓰는 행위'가 점점 필요 없어지는 디지털 세상이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 삶의 깊이와 성찰에 대해서는 결핍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필사는 일반적으로 볼펜이나 펜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시대를 반영하듯 컴퓨터 자판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성경의 글자수가 약 133만자에 이를 정도로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볼펜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몇 년이 소요되고, 컴퓨터 자판으로 필사를 하는 이들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구절 전체를 먹을 갈아 붓에 먹물을 묻혀 한지에 써내려가는 이가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움에 빠지게 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영락교회 고상우 장로(82세)다.
 
영락교회는 지난 12월 2일까지 한경직목사기념관에서 고 장로의 성경필사본을 전시했다. 지난 2009년 1월 1일부터 서예 성경필사를 시작한 고 장로는 신약의 필사를 완결짓고, 구약 필사에 돌입해 모세오경을 마친 상태. 영락교회에서는 고 장로의 서예 성경필사가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최종적으로 필사가 끝나려면 앞으로 6년여가 더 소요될 전망이고, 현재 고 장로의 나이가 83세인 점을 고려해 지금까지 완성된 필사본을 일주일간 전시하기로 한 것.
 
"하루에 보통 3~5시간 정도를 붓을 잡고 앉아 필사를 합니다. 한 줄에 22~23자가 들어가는데 이걸 쓰는데만 10여 분이 걸려요. 성경구절이다보니까 틀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한자 쓰고 보고 한자 쓰고 보기를 반복하지요."
 
고 장로는 먹물조차 시중에서 파는 것을 가져다 쓰지 않는다. 반드시 본인이 벼루에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들어 쓴다. 큰 사이즈의 한지 묶음을 제본하는 곳이 없어서 여러 시행착오 끝에 본인이 직접 제본을 하기도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만큼 최대한 정성을 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고 장로는 "우리나라 성경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데 한지에 우리나라 말로 기록한 필사본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예필사를 시작했다"며 "글씨를 써본 분들은 서예필사를 위해 어느 정도 정성이 들어가는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예 성경필사를 하면서 고 장로는 무엇을 느끼고 체험했을까?
 
"성경을 다독하는 분도 있고, 정독하는 분들도 있지요. 나도 여러번 성경을 봤지만 한자 한자 쓰는 은혜가 커요.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신앙의 은혜가 많더라니까요. 그것을 쓰는 시간에는 무아지경으로 들어갑니다."
 
고 장로가 필사한 성경 제본의 끝에는 자신의 직인과 함께 아내 조익정 권사의 직인도 나란히 찍혀있다. 말하자면 감수인이다. 고 장로가 필사를 해놓으면 성경원문을 가지고 꼼꼼하게 대조를 하며 감수하는 것은 조 권사의 몫이다. 조 권사는 "남편의 서예필사가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인지 알기에 어떤 때는 감수를 하다가 감사해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고 말한다.
 
83세의 고령인 고 장로의 소원은 성경전체를 완필한 후 전시회를 여는 것, 그리고 이것을 영구보존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다.
 
"서예는 동양의 문화인데 점점 사라지잖아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저라도 지켜야지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손 안떨리고 어깨도 성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고 장로의 서예필사 완성본을 볼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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