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7~1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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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3일(목) 17:09

월-불편한 진실
본문 : 눅 19:29~40
찬송 : 300장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이야기를 현대적 의미에서 재해석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개미처럼 여름 내내 일만 하다가 겨울이 되어 그 후유증으로 병원신세를 지면서 여름에 벌인 돈 병원비에 다 쏟아 부을 바에야 차라리 베짱이처럼 여름에 시원한 그늘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나 부르다가 가요제에 나가 히트 한번 치면 대박 터지는데 고생하면서 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개미보다 베짱이가 더 낫다는 것이 세상 논리이다. 본문은 이러한 세상 논리를 반박하는 신앙적인 삶을 한 동물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도 다 내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것이다. 불편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실이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아니한 어린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 주님은 지금 예루살렘에 가시기 위해서 어린 나귀를 타실 예정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길이 잘 든 준마가 나아 보인다. 나귀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원하셨다. 주님이 원하셨던 진실이다. 주님을 위한 헌신, 주님을 위한 수고, 주님을 위한 충성은 순수해야함을 말씀하시기 위함이다.
 
이제 어린 나귀새끼는 예수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걸어간다. 자신의 등에 그 무엇도 실어 본 경험이 없는 어린 나귀 새끼 등에 건장한 젊은 청년 예수님이 타고 계신다. 벳바게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줄잡아 10리길 약4km이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눈물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어린 나귀새끼의 입장에서 보면 죽을 힘을 다한 섬김이다. 지금 주님은 이 어린 나귀가 무척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 힘들어도 가야함이 사명임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영광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귀 새끼는 한 번도 울음소리를 내지 아니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주를 향한 말없는 섬김이다. 말없는 섬김이란 불편한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섬김이란 침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상대방이 너의 오른 뺨을 때리면 말없이 왼 뺨도 돌려대고 5리 가자면 말없이 10리 까지 가고, 속옷을 달라면 아무 이유 달지 말고 말없이 겉옷까지 벗어 주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불편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길을 가야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로 하여금 순수함과 힘듦과 침묵 속에서 진실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두기 목사
울산수정교회

화-누가 주인인가?
본문 : 롬 14:7~9
찬송 : 80장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고 있을까?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정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 '내 삶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정말 신앙과 삶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나?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잘해왔다면 더 잘해보자. 아니, 내가 잘 하려고 하지 말고, 힘을 빼고, 주님을 의지해보자.
 
첫째, 거울을 보자. 거울 안 보는 사람은 없다.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은 어떤지, 옷매무새는 어떤지 점검한다. 그렇게 수시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성경의 거울을 본다면, 목회자인 자신도,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와 교회가 성숙을 향해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씻고 또 거울을 본다. 하루의 먼지들을, 화장한 것을 씻어낸다. 그런데 성경은 읽지 않고도 태연하게 잠자리에 든다. 성경을 보아야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성경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 준다. "너 자신을 먼저 알라!"
 
둘째, '나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알자.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이다. 가정과 교회 안에서 다들 세상적인 방식대로 나는 능력이 있다고 내세우는 바람에 갈등이 일어난다. 성경의 거울을 잘 보면 '너는 능력 있어'라는 메시지 이전에 '너 자신을 먼저 알아라, 너는 죄인이야'라는 메시지를 준다. 우리가 성경의 거울을 보지 않고 세상의 거울만 보고 살 때 사탄은 속삭인다. '네 삶의 주인은 너 자신이야.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도 다 너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게 될 거야.' 내가 내 삶에 있어서 유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구원에 있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무능력하다!
 
셋째,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되어 사는 것이 죄이다. 성경의 거울을 보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철저하게 알게 된다. 내 마음 중심에서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 자기가 주인된 자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이고, 주님이 주인된 자는 '나는 주의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이것은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주를 위하여 사는 자로 온전히 거듭나는 것이다. 세례문답에서 기계적으로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요청되는 때이다.
 
오늘의 기도
 
무능력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선 목사
온무리교회

수-더 너그럽게 더 다정하게
본문 : 약 3:19~20
찬송 : 366장

중국 고전 한비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가 조나라에 태자를 볼모로 보내게 되었는데 태자의 수행원으로 방총이라는 신하를 뽑았다. 방총이 위나라 임금인 혜왕에게 질문했다. "임금님께서는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누가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두 번째 사람이 와서 말한다면 믿겠습니까?" "아니다." "세 번째 사람이 호랑이를 봤다고 얘기하면 어떠시겠습니까?" "그 땐 믿을 것이다." 그러자 방총은 " 임금님 이처럼 사람 셋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냅니다"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삼인성호이다. 정말 무서운 것이 우리의 혀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우리의 말 때문에 삶이 황폐해지고, 불행의 자리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인생은 언어의 문제다. 그럼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첫째, 믿음의 언어다. 믿음의 언어란 긍정적인 언어이다.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주기를 바라고 예수님께 데리고 온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말을 바꿀 것을 명하셨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종종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둘째, 진실한 언어다. 우리의 말이 진실을 만나게 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과 통하고 사람과 통하게 되어 있다. 진실한 언어는 생명력이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나 속이는 말, 거짓된 말, 아첨하는 말, 악한 말은 결국 우리의 인생을 실패하게 한다.
 
셋째, 축복의 언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하신 일이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실 때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서 축복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에게 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언어 진실한 언어 축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기홍 목사
가재울중앙교회

목-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삶
본문 : 딤전 6:3~5
찬송 : 301장

바울의 마지막 유언서와도 같은 본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영생을 추구하는 목표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바울의 삶과 사역에서 깨달아 알게 하신 고귀한 영적 교훈을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세밀하게 전해준다.
 
인간의 현존이란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욕망을 추구하고 하나님은 멀리하며 피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세속적 욕망을 버리게 하시고 오히려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낸 뜻이 무엇인가, 어떤 지체를 섬기며 살도록 보내셨는가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영적 가치들을 알려주고 있다.
 
2015년을 돌아보자. 무엇을 간절히 추구하고 무엇을 피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한해를 잘 결산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새 마음을 주셔서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가게 하고 미움과 시기는 멀리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날마다 주장해 가시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자꾸 세상에 허탄한 교훈이나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해서는 착념치 않는 것에 대해 지적한다. 착념이란 '딱 달라붙다, 부착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신령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안에 우리 마음이 붙어 있는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에 착념치 않을 경우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라고 바울은 경고한다. 말씀과 멀어져 있다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여 무익한 말들만 가득하게 된다. 왜 변론과 언쟁, 다툼이 많은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진리에 착념함으로 갖게 되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말한다.
 
자족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걸 만족하는 마음이요, 하나님 한분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큰 은혜로 만족을 아는 마음이다. 내가 남들보다 더 가지지 못해도, 더 배우지 못해도, 더 건강하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기쁨이 말씀 안에 있다.
 
2015년 남은 12월이 아쉬움보다 예수그리스도로 자족하여 감사하는 날들로 가득 채워져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새로운 한 해를 맞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영생을 추구하며 자족하는 신앙생활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덕호 목사
복음교회

금-은혜 입은 자
본문 : 눅 1:26~38
찬송 : 104장

추위의 매서움 앞에서도 12월의 거리는 열정으로 술렁인다. 아마도 이 열기는 계획했던 일들을 미처 이루지 못한 채 12월을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다시 새롭게 맞을 1월에 집중하는 이들의 기다림으로 인한 게 아닐까?
 
경험해보지 못한 새날에 대한 기다림에 희망이 넘쳐나는 것처럼 마리아도 사랑하는 요셉과 가정을 이루는 결혼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아름답고 순결한 신부로 단장한 자신을 그려보며 행복감에 젖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인사말을 전한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순간 자신이 기다리는 시간들, 요셉과 함께할 미래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펼쳐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특별한 사랑, 보호, 양육, 승리, 회복, 축복의 약속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의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수태고지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결혼하기 전에 요셉의 자식이 아닌 아이를 임신할 것이라는 전언은 죽음을 예고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불안에 싸여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며 반박한다. 이에 천사는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말씀의 성취로 이뤄질 것이며 그 예로 그동안 임신하지 못했던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육개월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마리아는 자신의 수태가 다윗왕의 왕위를 따라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아임을 깨닫고 비록 어떤 두려운 일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며 순복한다.
 
이제 마리아의 기다림은 개인적인 기쁨에서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기쁨으로 새로워졌다. 그녀의 하루 하루는 어떤 고난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자신을 통해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희망의 설레임이 되었다. 마리아의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입은 자,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는 환희에 찬 고백 가운데 평안으로 채워진다.
 
마리아의 이 아름다운 변화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 입은 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준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던 일이 이뤄질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록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구속사의 한 모퉁이에 쓰임받기 위하여 은혜를 사모하고 고백하는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자.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데 자신을 드린 마리아처럼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은혜 입은 자가 되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입술과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일숙 목사
인천세광교회

토-매일 기적을 경험하자
본문 : 요 2:1~11
찬송 : 545장

어거스틴은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요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은 믿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믿는다는 뜻이다.


과거 남자 집사님들께 "하나님의 말씀, 뜻대로 사업하면 사업이 잘 될까요? 망할까요?"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대부분 "망한다"고 대답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경우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니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 행하신 기적을 말씀하고 있다.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함께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혼인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지게 된다. 그 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한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말씀한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이 최상급 포도주를 왜 이제야 가지고 왔냐고 한다. 연회장이 마신 것이 무엇인가? 물이다. 그런데 연회장이 물을 마신 뒤 최상급 포도주라고 하니 하인들이 생각하기를 '연회장이 취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맛을 보았을 것이다. 하인들이 그 맛을 보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을까? "기적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연회장이나 하인 모두 똑같이 물로 만든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데 연회장은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기적의 포도주라는 것을 모른다. 하인들만이 기적의 포도주라는 사실을 안다.
 
무슨 차이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직접 그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은 이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못한 사람은 기적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기적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기적의 연속이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매일 삶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말씀에 순종해 매일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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