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기도문, 주일예배 언제ㆍ어떻게 사용되나?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주기도문, 성찬성례전 분병분잔 직전에

김명실 교수
2015년 12월 02일(수) 09:34
   
▲ 사진은 성찬기도문에 포함된 "성령의 임재를 위한 기도(에피클레시스)" 가 드려지고 있는데, 빵과 포도주에 성령이 임하셔서 주님의 몸과 피의 표징이 되게 해달라는 내용.

안수를 받지 않은 사역자들이 축도의 대용으로 주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오랜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주기도문은 여전히 축도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간혹 주기도문을 예배에 포함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목회자들도 만나지만, 여전히 주일 공예배에서 주기도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주기도문은 원래 기도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용으로만 사용되었는가? 예배 속 활용은 없었는가? 그러지 않다! 주기도문은 기독교 초기부터 예배에서 확고하게 그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것도 성찬성례전의 분병분잔 직전에 행해졌고, 이 오랜 전통은 동ㆍ서방 교회들 속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이 성찬이 없는 주일예배를 드리거나, 극도로 축소된 형태의 성찬성례전을 택하기에 주기도문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극도로 축소(?). 그렇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들이 사용하는 성찬예문은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  현재 세계교회들이 사용하는 성찬기도문은 3세기, 히플리투스의 사도전승 속에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한데, 아마도 이런 역사적인 성찬기도문(The eucharist prayer)이 포함된 성찬에 참여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한국기독교인들은 생소함 혹은 이질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축소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에 의한 것으로, 루터는 라틴어로 진행되던 길고 장황한 성찬기도문 대신에 회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요소들을 생략하였다. 칼빈은 루터의 것을 더 축소하여 제정의 말씀만 남겨두었고, 오히려 십계명을 넣어 엄격하고 훈계적인 성찬례를 개발하였다.

당시 로마 카톨릭 사제들의 라틴어 성찬집례 방식은 비판받기 충분했지만, 그 기도문 자체는 기독교 초기부터 전해져온 성찬신학이 풍부하게 담겨있었기에 종교개혁자들의 성찬성례전 개혁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개혁전통을 대표하는 루터교는 루터가 생략했던 성찬기도문의 많은 요소들을 다시 회복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장로교(PCUSA)를 포함한 북미ㆍ유럽의 많은 장로교단들도 이 기도문을 되찾아 사용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복해야할 성찬기도문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대감사기도(The great thanksgiving)'라고도 불리는 성찬성레전의 핵심부분이며, 이 감사기도가 끝나자마자 주기도문과 분병분잔이 이어진다.

'대감사기도'라는 단어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도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피를 감사하고 기념하는 밝고 웅장한 기도이다.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천군천사들과 함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 주님의 제정의 말씀과 그 명령을 기억한다는 고백, 그리고 빵과 포도주와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 위에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사용하는 성찬기도문들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온전히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드시 바티칸이 정한 기도문만을 사용해야하는 로마 카톨릭과는 달리, 개혁교회들은 기본 순서와 내용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기도문을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포기할 자유가 있었다면, 또한 우리에게는 회복하고 발전시킬 자유도 함께 있는 것이다. 미국장로교(PCUSA) 예배서의 번역서인 '공동예배서'에서 그 예문들을 찾아볼 수 있다.

WCC 부산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룬 한국교회, 이제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성찬기도문 회복으로 세계화에 한걸음 더 나아갈 때가 되었다. 또한 성찬기도문의 회복은 주기도문의 회복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될 것이다.

 

김명실 교수(영남신대, 예배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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