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경제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5년 12월 02일(수) 09:22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금요일 저녁 파리 11구의 한 카페. 손님들은 한가롭게 포도주를 곁들여 늦은 저녁을 들고, 종업원들은 계산대에서 냅킨을 접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롭던 금요일 저녁의 광경은 유리 파편과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튀면서 한 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혼비백산한 손님과 점원들에게 화염 한가운데로부터 총을 든 사내가 다가왔다. IS가 보낸 테러리스트였다. 지난 11월 13일 저녁 파리에서는 130명의 무고한 시민이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었다.

테러가 가져온 인명의 손실을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테러는 분명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 영향이 일시적인 데서 끝나지 않고, 현대 경제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근본적인 부분까지 파고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테러는 '두려움'을 매개체로 경제활동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지금 파리뿐만이 아니라 유럽 주요 도시의 시민들은 두려움에 마음이 무겁다. '혹시 거리에서, 극장에서, 식당에서, 아니면 사업장에서 저승사자와도 같은 테러리스트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은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현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신뢰'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신뢰라고 했다. 그는 또한 "불신은 사회적 거래비용을 증가시켜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은 경제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아무리 법 제도가 잘 정비돼 있어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사회에 신뢰가 형성될 수 없다. 평화롭게 저녁을 즐길 수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다. 안전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테러가 사회의 신뢰를 훼손하고, 손상된 신뢰가 다시 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지속한다면, 선진국으로서의 경제적 번영도 누릴 수 없게 된다.

과거 경험을 보면 다행히도 테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2004년 마드리드와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당시 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 소폭 하락한 후 바로 회복했다. 가장 충격이 심했다는 2001년 뉴욕의 9.11테러 당시에도 폭락한 주가가 다음 분기에 회복됐고, 연말에는 미뤘던 소비를 재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 파리 테러에서도 금융시장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아, 투자자들이 아직은 신뢰를 잃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슬람 극단주의 분파의 테러리스트들은 잇따라 추가테러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에 추가 테러가 동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테러가 더욱 조직화, 다양화, 국제화되면서 그 근절이 어려워 졌다. 만약 테러리스트들의 잇단 위협이 현실화 된다면, 앞으로 현대 경제체제에는 신뢰의 손상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문제는 몇몇 서방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화된 세계경제 곳곳으로 빠른 시일 내에 확산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사회는 테러의 근절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테러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반테러 정책에 편승하려 하기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기여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테러 없는 세계를 위해 기도하자. 평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경제적 번영의 근본적인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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