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하나님 경외 정직한 사업가' 안영환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5년 12월 02일(수) 08:52
▲ 안영환 장로.

* (유)일오삼광고공사 대표 안영환 장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2절)

안영환 장로(전북노회 전성교회)가 평생을 곱씹은 성경구절이다. 30년 넘게 개인사업을 하며 이 말씀을 항상 마음판에 새겨놓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고난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안 장로는 유난히 사업과정에서 타인의 시기와 질투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마다 그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벧전 3:9)는 말씀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벧전 3:11)는 말씀에 순종했다.

안 장로는 노하기를 더디했다. 분노를 조절하며 온유함을 갖도록 기도한 결과, 주변인들은 그를 보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안영환 장로는 4살 무렵 당시 10대 중반이던 누나 안영녀 권사의 손에 이끌려 김제 죽산의 명량교회를 가게 됐다. 누나 외에 4형제가 있었는데, 성격이 가장 순한데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 아들로 성장했다.

누나를 따라 교회에 나온 4형제가 세월이 지나 명망 있는 신앙 가족을 이뤘다. 첫째 안영목 목사는 전남노회 소속으로 교도소선교를 하고 있으며, 둘째는 안영환 장로, 셋째 안영진 목사는 예장합동 총회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막내 안영표 목사는 평북노회 반석중앙교회를 시무 중이다.

'유순함'하면 떠오르는 양(羊)처럼 순하고 어질고 참을성 많은 학창시절을 보낸 안 장로는 신앙생활도 모범적이어서 16살부터 교회학교 교사를 시작해 40여 년을 다음세대 양육에 헌신했다. 교회학교아동부전국연합회장과 총회 교육자원부 회계 등을 역임하며 총회적으로도 다음세대 양육에 인정을 받았다.

25세에 최금례 권사와 결혼한 안 장로는 농사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이후 전주로 나와 쌀 도매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하며 특수도색 도장사업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도장사업으로 안 장로는 신앙의 중대 갈림길에 들어선다.

"전북지역에서 도장사업을 독점하던 업체 사장이 폭력배 출신이었는데, 교묘한 방법으로 업계 경쟁자들의 사업장을 문닫게 만들었어요. 제가 사업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나 주문이 많이 들어오자 아니나 다를까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악덕업주는 횡포와 속임수로 누명을 씌우며 안 장로를 벼랑 끝까지 몰고갔다. 건장한 사내들을 대동해 으쓱한 밤에 안 장로를 미행하며 무언의 위협을 가하더니 결국에는 모처로 유인한 뒤 "장사를 그만두라"면서 집단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3시간 여의 폭행을 당하고 풀려나자마자 인적이 드문 시골길로 가 날이 새도록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안 장로는 "너무나 분했다. 이틀밤을 설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에 대한 성경말씀을 읽고 또 읽었다"면서 "주변에서는 경찰에 신고하고 복수하라고 부추겼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원수 갚는 것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안 장로는 '복수'라는 달콤한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쳤다. 폭행사건이 있고 5일 뒤 악덕업주는 협박과 음해가 무산되자 갑자기 사업을 정리하고 업계를 떠났다.

안 장로는 "그 사건이 있으면서 살아가며 누가 나를 해하려 할 때, 같은 방법으로 원수 갚는 것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 안영환 장로를 비롯한 4형제 부부. 누나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온 형제들은 훗날 신앙의 명문가를 이뤘다.

도장사업을 동업자에게 인계한 그는 광고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믿음의 기업 (유)일오삼광고공사다.

처음에는 판촉물과 간판, 현수막 제작 등을 하다 2년 여 정도 사업이 잘 안돼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하나님의 기업을 어설프게 경영할 수 없다는 의지를 갖고 관공서 등을 돌며 영업에 나섰다. 영업철칙은 '술로 어울리지 않고 불의한 로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

안 장로는 "억지로 술을 먹이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지만 타협하지 않고 모든 일에 여호와를 경외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사업을 하면서도 교회학교 교사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둘기선교인형극단을 만들어 행사요청이 들어오는 교회를 찾아 인형극으로 전도에 나서기도 했다.

안 장로는 광고업계에서 두각을 보이며 한국옥외광고협회 전주시지회 지회장으로 선출됐다. 여기서도 그는 복음의 전령사 역할을 했다. 크리스찬 모임인 '예닮애드 선교회'를 만들어 농어촌 산간벽지 미자립교회에 불 꺼진 십자가를 보수하고 설치해주는 봉사를 했다.

안 장로는 "어떤 교회는 십자가만 만들어 놓고 네온 설치 비용이 없어 13년째에 비로소 불을 밝힌 곳도 있었다"며 "10년 넘게 무료 봉사로 이 일을 계속하게 된 것은 주님의 신실하심이 인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유)일오삼광고공사 사업장 전경.

그러던 중 안 장로는 또 한번의 고난을 당하게 된다. 6년 전 전주시의 새주소판 사업을 수주하고 직원들 앞에서 시공 시범을 보이다 4m높이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환자실에서 3일만에 깨어난 그는 사건당일의 기억이 사라지고 발음이 약간 둔해진 것 외에는 골절 하나 없이 기적적으로 20일만에 퇴원했다.

안 장로는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셨기 때문으로 믿는다"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으니, 더 열심히 선교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 안 장로는 LED 십자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특허기술로 4년 어간에 90여 곳의 LED십자가를 설치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안 장로는 매일 새벽녘 교회를 찾아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다"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담대해 이겨내겠다는 믿음의 기도가 빠지지 않는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에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 머리에 서리가 내려 앉은 모습이 낯설지만, 그래도 제 마음에 주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특허기술로 제작한 LED 십자가.

* '특허 LED 십자가' 기술 인정
안영환 장로가 최근 주력하는 'LED 십자가' 설치사업이 관련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수많은 특허기술로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안 장로는 "같은 회사의 같은 제품이라도 누가 시공하고 어떻게 작업하느냐에 따라 LED 수명이 다르다"며 "LED 수명의 관건은 열을 최대한 배출해주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특허기술로 조그만 구멍을 내 열을 식히고, 그 구멍 안으로 벌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노하우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4면체에서 빛이 발산되는 십자가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십자가에 그림자를 없애는 특허로 깨끗하고 선명도가 좋다.

수명이 길고 튼튼한데다 외형까지 깔끔해 4년만에 전국 교회 90여 곳이 안 장로 업체의 LED 십자가를 설치했다.

안 장로는 "십자가로 이득을 취할 생각이 없다. 복음의 밝은 빛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비춰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선교차원으로 미자립교회는 20% 정도 할인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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