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장소가 있습니까?

[ 희망편지 ]

장보철 교수
2015년 11월 24일(화) 13:21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을 나가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얼핏 보았을 때만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또 뭔 일이 터졌는지, 화면에 나온 사람들은 약간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후 정신 차리고 보니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망자만 약 130여 명,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총 480여 명이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했던 테러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시리아ㆍ이라크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국가 수립을 선포한지 1년 반 만에 반인간적인 무차별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 시대에 과연 우리에게 '안전'한 곳이 있는가 새삼 묻게 된다. 목회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매 학기 초마다 학생들에게 모든 상담학 교실은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상담학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상, 거리낌 없이 동료들에게 나를 꺼내 보일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안전한 장소는 어디일까.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타인을 감시하게 된다.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을 못 믿는, 정말 살맛 안 나는 세상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 지. 그런데 내 숨을 더 막히게 하는 것은 영화 한 편 보려면 뱃지를 달고 손에는 총을 든 사람들을 통과해야만 하는 정말로 그런 미친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몇 해 전에 미국 콜로라도 오로라의 한 극장 안에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12명이 죽고 60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의 희생자 중에 제시카라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한 달 전에 캐나다 토론토의 유명한 쇼핑센터인 '이튼센터'에서 벌어졌었던 총격사고를 극적으로 모면한 후, 덴버로 이주하자마자 또 그런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녀는 캐나다에서의 일을 겪은 후에 이런 글을 적었다. "삶이 덧없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 죽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이 세상. 하나님께서 처음 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파괴적이고 흉칙하게 변해져만 간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총기 사건이 일어나 목사와 교인들이 죽어간다. 먹고 살아가는 데 바빠 내 한 몸 잘 먹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사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은 황폐해져만 간다.

정말 정신 차리고 돌아보지 않으면 신분증 확인 당하고 교회에 들어갈 수 있는 세상, 빵집에 들어가는데도 몸 여기저기 수색 당하는 세상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안전한 장소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거꾸로 우리가 미친 세상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번 프랑스 테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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