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유기농 딸기' 통해 선교하는 박수열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5년 11월 05일(목) 11:39
▲ 박수열 장로는 유기농 딸기 생산과 딸기잼 판매를 통한 수익의 상당부분을 해외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딸기잼 창고에서 박수열 장로가 딸기잼을 들어보이고 있다.

딸기로 유명한 경북 고령군의 한 시골마을에 창조질서 보전의 파수꾼으로, 그리고 세상의 부와 명예를 좇지않고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가는 '주의 종'이 있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2차가공품인 딸기잼까지 생산하는 박수열 장로(안림교회)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풍성한 추수를 맞는 농부처럼, 인내하고 오래 참으면 결실을 맺는 것을 믿으며 그것을 감사함으로 여기고 있다.

박 장로의 삶은 시편 126편 5절 말씀인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도다"와 들어맞는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는 두둑한 믿음 하나만으로 세상적 욕망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1980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딸기는 해마다 한국가톨릭에서 전량 매입할만큼 우수한 품질로 정평이 나있다. 유기농 재배한 딸기와 그것으로 만든 잼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수익의 대부분을 해외선교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캄보디아에 교회 4곳을 개척했다. "하나님의 선교 도구로 쓰인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격이 있다"고 고백하는 그다.

이런 축복을 받기까지 박 장로는 연단의 과정을 거쳤다.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충성되게 참고 견딘 결과 정금과 같이 나올 수 있었다.

박 장로는 부모가 기독교신앙 1세대로 모태신앙을 갖고 있다. 고향이 지금 터전인 경북 고령군 쌍림면으로, 안림교회에서 70여 년간을 줄곧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학교 교사를 시작해 아동부 교사로 32년을 봉사했다. 교회학교에서 가르치던 학생이 지금 같은 교회 '막내 시무장로'가 됐다.

박 장로는 학창시절을 회고하며, "예배에 충실하고 집중하는 학생이었다"며 "어린시절 가정예배에서의 교육이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중요성과 목사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섬길 것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면 최대한 집중해 하나님과 만나려 노력하고, 생산한 잼의 상당수를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는 등 남을 섬기는 일에 앞장선다. 이 부분을 2녀 1남의 자녀에게도 내리신앙으로 가르쳐왔다.

딸기 농사를 지은지는 35년이 됐다. 일본 의류수출 사업을 하다 경기불황을 맞으며 업체를 정리한 후였다. 착잡한 심정이었지만 "돌아보니 은혜요 감사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말한 '은혜'의 연유는 이렇다. "사업을 접은게 1970년대 말이었어요. 당시 우리 교회가 건축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업을 접고나니 시간이 많아 모래와 자갈 등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교회 건축에 보탬이 된다는게 감사한 일이지요"

딸기 농사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보온관리에 실패해 허무하게 딸기를 모두 버리기도 하고, 판로를 발굴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생소한 유기농을 고집해 손쉬운 생산을 스스로 포기했다.

박 장로는 "축산학으로 유명한 대학을 찾아가 몇 일씩 선진농법 교육을 받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스스로 연구하기도 했다"며 "주변 사람들이 당장 생산량이 떨어지니 '적당히 해라. 어리석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신앙양심으로 유기농을 밀고나갔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세상적 욕망을 품었으면 유기농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딸기농장을 하나님의 선교농장이라고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니고 나는 단치 청기지(관리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농부의 임무이자 사명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실천적 믿음이라고 여긴다"고 강조했다.

▲ 박수열 장로는 집안 곳곳에 자신이 개척지원한 교회 등 해외선교지 상황의 사진을 붙여놓고 수시로 기도하고 있다. 자녀손들에게도 내리신앙 교육으로 선교확장에 힘쓸 것을 권면하고 있다.

18년 전 경북도청에서 우수농가로 선정돼 유럽선진국 견학을 가면서는 그곳에서 목격한 2차가공품인 잼에 대해 눈을 떴다.

박 장로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 가공으로 농민이 살아남는 법을 깨닫게 하셨다"며 "잼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우리나라에 빵과 잼 문화가 확산되며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잼을 만들면서 방부체 등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오로지 딸기 70%, 설탕 30%로 만든다. 양보다는 질을 선택한 그다.

잼은 매년 수천개가 무료 선물용으로 소비된다. 박 장로는 "잼을 선물하니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신다. 그러면 영적 퇴비가 되어 나에게 풍성한 열매로 돌아와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최근 10여 년 간 박 장로는 해외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동기인 캄보디아 선교사를 통해 시소폰 지역에 3곳, 깜퐁통 지역에 1곳 등 4곳의 교회를 개척 지원했다.

4번째 교회는 3대(代)에 걸친 가족이 힘을 모아 지원했다. 박 장로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하나님께 축복을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이다. 믿음의 대를 이어가며 선교의 대도 잇기를 원한다"고 독려했고, 손주까지 과자 사먹을 용돈을 아껴가며 헌금해 교회를 건축하고 11월 17일 헌당을 앞두고 있다.

박 장로는 또한 선교의 통로가 되고 있다. 사람을 전도하듯 박 장로는 지인들에게 해외선교지 지원을 권면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박 장로가 출석하는 안림교회와 대구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대구서남노회 목민교회 등이 해외선교지에 교회를 건축하기도 했다.

한편 박수열 장로는 문영희 권사와의 사이에 2녀 1남을 두고 있다. 교계 경력으로는 대구서남노회장을 비롯해 총회에서는 재판국, 이슬람대책위원회, 훈련원 회계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장로교출판사 회계이사를 맡고 있다.


* 취재 뒷 이야기
박수열 장로의 평소 삶은 검소하고 소박하다. 기자가 방문한 그의 자택은 소탈한 생활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30년이 넘었다는 낡고 작은 단층주택 안으로 들어서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오래된 가구와 가전제품, 낡은 벽지, 단출한 살림살이가 눈에 띄였다.

박수열 장로는 "집이야 내가 아내하고 딸기농사 짓다 들어와 씻고 잠만 자면 되는 곳인데 꾸미고 그럴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박 장로가 캄보디아에 교회 4곳을 건축하며 지원한 선교금은 번듯한 양옥집 한 채를 짓고도 남는 금액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 대신,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인 교회 개척 지원에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 옥합을 깨뜨려 값진 향유를 주께 드린 여성 (막 14:3~9)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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