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11월 9~1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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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4일(수) 17:09

월-진실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본문 : 시 50:7~15
찬송 : 285장

오늘을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었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은 아삽을 통하여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면서 일상의 삶 속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제단에 바치는 많은 제물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그들의 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인간이 드리는 제물은 감사의 표현이어야 한다. 감사를 상실한 형식적인 제사나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번제보다 낫다는 뜻을 매일 새김질해야 한다.


이런 새김질은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고 우리의 말과 행위를 진실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 감사는 히브리어로 '토다'이다. 그 뜻은 찬양 또는 고백이다. 이는 감사함으로 찬양이 저절로 수반되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감사라는 헬라어는 '유카리스티아'로 '기뻐하다'란 뜻인 '카이로'란 단어에서 나왔다. 이 뜻은 '기쁨의 자연적 발로가 감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숫소나 숫염소가 없어도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의 고백과 찬양을 드리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와 찬양이라는 가장 나은 제사에 주의를 돌리게 하신다. 기도와 찬양은 율법 아래서 모든 제사보다 앞서 드려졌고 다른 무엇보다도 강조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의 진지함을 회복하고 진실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고백하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는 제사이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로 인해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매일, 자주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셋째, 우리는 그와 맺은 언약을 이행해야 한다. 말씀의 사람답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는 길이며 죄를 버린 사람답게 의무를 이행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는 환난 날에 신실하고 열렬한 기도의 횃불을 들고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하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한 손길아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형식적인 신앙, 익숙한 신앙에서 벗어나서 진지함을 회복한 관계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일상의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병옥 목사
한세영광교회

화-그리스도인의 삶, 기도
본문 : 살전 5:17
찬송 : 361장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요, 기본 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믿음의 증표이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하는 기도를 쉬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이 말은 정한 기도시간에 빼놓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그렇다면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사도바울이 전도한 곳 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그렇다고 오늘날처럼 대단한 건물을 자랑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교회는 가정교회였다. 사도바울은 수많은 교회를 세웠으면서도 그것이 자랑일 수 없었다. 오직 자랑은 십자가였고, 교회들이 십자가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 참 교회의 모습으로 세워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바람과는 달리 교회들이 교회의 참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소식을 곳곳에서 듣게 된다. 어떤 교회는 이단들의 미혹에 빠져 위기에 처해있다, 어떤 교회는 일은 하지 않고 종말의 때만을 기다린다, 어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쪼개어 서로 다투고 분쟁하고 당파를 짓고 있다는 소식들이었다.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사도바울이 무엇 때문에 교회를 이렇게도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까? 그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된 지체이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교회의 참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교회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이제까지 기도를 쉬었다면 다시 기도의 영성을 회복하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철준 목사
산청교회

수-부르심의 은총
본문 : 고전 15:10
찬송 : 324장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완전히 다른 인생길을 걸어간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은총의 길을 걷는 축복의 백성들'이다. 이 영적 진리와 놀라운 은총에 매일 눈뜨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뛰어 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자녀들에게 동일하게 주신 최고의 은총은 '부르심의 은총'이다. 돌아보면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 고단한 삶,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이 가득하지만 하나님이 베푸신 '부르심의 은총'의 위대함을 확실히 깨닫고 살아가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위대한 주의 종 바울의 가슴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베푸신 '부르심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었다.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여기서 '나의 나 됨'이란 과거 예수님을 대적하며 살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자녀의 자리로, 구원의 자리로, 더 나아가 사명의 자리로 부르신 은총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인생에 임한 최고의 은총이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이었음을 여러 번 고백했다.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을 입지 못했다면 바울은 여전히 예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이 결국 그로 위대한 삶을 살게 한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만일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제 아무리 고운 꽃도 그 누군가 불러 주지 않았다면 의미없는 존재이다. 솔로몬 왕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술람미 여인은 평범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왕이 그녀를 '내 사랑아'라고 불러 주었을 때, 왕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고 인정해 줄 때, 그녀는 세상의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운 여인, 자존감으로 충만한 멋진 여인이 되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구원의 자리로, 사명의 자리로 부르심이 우리 인생에 있어 최고의 은총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시고, 사랑하여 구원해 주시고, 사명을 맡겨 주신 존귀한 인생이다. 바울처럼 감사함으로 은총의 길을 걷는 축복의 성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최고의 은총임을 깨닫고, 어떠한 상황을 만날지라도 매일 감사하며 은총의 길을 걷는 축복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신일 목사
신내성화교회

목-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 갈 6:6~10
찬송 : 204장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오늘 말씀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해당되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다. 한국기독교 역사는 15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부흥을 일궜다. 한국 초대교회는 믿음의 선조들이 성경대로 사는 믿음의 본을 보여주었고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기에 불신자도 교회를 신뢰했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삶이 부요해지자 교회에 성공주의 번영주의 맘몬주의가 팽배해지고 신앙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신앙관으로 말미암아 말씀과 삶이 불일치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한국교회가 바닥을 치고 있다. 주일 성수 잘하고 헌금 잘하고 봉사 잘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것 중요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의 핵심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복음이요 생명이요 진리이다. 갈라디아서도 동일한 내용이다.
 
여기서 바울이 오직 믿음만을 강조한 배경을 잘 알아야 한다. 바울은 율법에 흠이 없을 정도로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고 고백한다. 그것이 구원받는 길인 줄 알았기에.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사도바울이 전도한 교회를 다니면서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구원받는 조건이 할례를 받는 것이라면 왜 예수님이 그 끔찍한 십자가에 돌아가셨겠느냐 하면서 본질을 변질시킨 자들을 쫓아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본받기를 원했고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계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해서이다.
 
사복음에서 예수님이 간곡히 말씀하신 내용이 하나님의 자녀된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니 그 사명을 다하라는 것이다. 산상수훈 마지막 결론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믿음의 집이 무너지지 않고 든든하지만 행치 않는 자는 집이 무너져 버린다는 것은 구원이 말로만 주여주여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주님의 나라와 그의 뜻에는 관심 없고 오직 땅에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이다.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좇아 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좇아 살아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인생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명기 목사
보길교회

금-제사의 기름은 여호와께만
본문 : 레 3:9~11
찬송 : 428장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릴 때 흠 없는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제물을 준비하고 회막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게 된다.
 제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헌제자가 직접 동물을 잡아 제사장에게 드리게 된다. 이때 제사장은 제물을 받아 번제단에 올려 화제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도록 올려드리게 된다. 그리고 제사장의 몫은 제사장에게 돌리고 헌제자가 먹을 수 있는 화목제물은 정결한 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게 된다.
 그런데 제물에 있어서 누구도 취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기름이 있는 부분들이다. "그 기름을 모두 드리되 곧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고…" 기름은 누구도 취할 수 없고 오직 여호와께만 돌려져야 한다.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그러므로 기름이 있는 부분은 모두 구별하여 번제단에 올려 태워 하나님께만 드려져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기름이 주는 의미를 깊이 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기름은 힘의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좋은 지방성분이 있어야 힘을 쓸 수 있다. 힘을 쓰지 못하고 맥이 빠져 있는 사람을 향하여 기름기가 빠져서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이 기름에 해당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직 누구도 취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드려야 할 부분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광된 부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한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했다. 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돌린 느브갓네살 왕이 이슬에 젖으며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 모습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질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우리의 삶이 매일 매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광된 모든 것은 기름처럼 조금이라도 우리가 취하여 교만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드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혜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이 원하신다.
 
오늘의 기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 모든 영광은 주님의 것입니다. 오직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다스려 주시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성주 목사
솔밭교회

토-양 도둑질 하지 말라
본문 : 요 21:15~17
찬송 : 436장

디베랴에서 가버나움으로, 예루살렘까지 따라온 무리들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목격하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나다니엘,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옛 직업으로 돌아갔다. 옛 솜씨를 발휘하여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주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지니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이 잡았다. 아무리 자기 경험과 능력이 많을 지라도 순종이 제일이다. 조반을 마치신 후 이제 주님께서 하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조용히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질문은 "아가파오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는 고귀하고 숭고한 신앙적 사랑을 확인해 보시려고 질문하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질문은 "필레오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는 인간적인 정, 부자, 애인, 형제지간의 사랑이다. 사실 주님의 세 번에 걸친 질문은 베드로가 뜰에서 미온적인 태도로 불을 쬐고 앉아 있다가 계집 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일을 상기시키는 질문이다. "내가 일찍이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신다.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면서 왜 거기에서 고기만 잡고 있느냐"고 하신다. 그리고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무릎을 꿇었다. "주님, 이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일까?
 
첫째, 뒤돌아 보면 안된다. 십자가를 지고 뒤돌아 보는 자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 십자가 너머의 세상에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일들이 많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자.
 
둘째,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처음 은혜 받고 충성하며 헌신하던 삶을 잊지 말자. "주님만을 사랑합니다"라고 뜨겁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셋째, 주신 사명에 신실해야 한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 쯤 목사가 되어 목회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조언을 구하자 김은용 교수님은 "목사가 되거든 절대로 양 도둑질은 하지 말게, 그것은 명백한 절도죄이고 제 8계명을 어기는 것임을 명심하게"라고 말하셨다. 우리 모두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가 되자.
 
오늘의 기도
 
한국교회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주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성상 목사
만리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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