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사는 인생, 상처주지 말고 '사랑'만

[ 예화사전 ]

안현수 목사
2015년 10월 20일(화) 10:58

어느 날 심방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니 한통의 편지가 내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그 날 받은 편지의 발신인이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해병대 사령부 헌병단 구치소 김00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서두에 자신이 지난 7월 4일 김포에 있는 해병대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이라고 소개한 부분을 읽으면서, "아! 그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너무나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준 총기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급해서인지 편지는 노트를 찢어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 붉은 볼펜으로 써 내려간 문장은 "목사님 저를 살려 주세요"로 시작됐다. 단 몇 줄의 편지었지만 너무나 긴박하고 간절한 내용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하는 궁금함과 그의 애절함에 다음날 아침 그를 면회하기로 하고 주소에 적혀있는 해병대 사령부 구치소로 향했다.

군대 영창은 군시절 군종 때 가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가는 것이라 약간 긴장하며 헌병의 안내를 받고 면회실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앳 된 소년 같은 얼굴의 그가 들어와 머리를 숙여 인사 했다. 해병대는 지원입대를 하기 때문에 그도 만 18세의 나이에 입대해 어려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이런 아이가 동료를 4명이나 죽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건 당시 수류탄으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불발로 다친 다리를 절면서 나온 그를 보고 나는 헌병에게 그가 앉아서 대화를 나누도록 부탁했다.

우선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얼마전 정신 감정을 위해 공주치료 감호소에 갔었는데 마침 서울구치소에서 정신 감정을 받으러 온 무기수가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락을 하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무기수 형제는 나와 상담을 했던, 무기징역을 두 번이나 받은 소위 쌍 무기수였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 영혼을 연결시켜 주신 것이다. 해병대는 기수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집단인데 평소에 후임병에게 따돌림과 모욕을 당하자 술을 마시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동생 같은 그를 보고 함께 있던 그 무기수 형제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나에게 기도와 상담을 부탁한 것이라고 나중에 편지에서 밝혔다.

그 날 나는 "먼저 너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엄마 아빠가 계시니 절대로 자살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죽은 전우들의 영혼과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참회의 생활을 하라고 권면했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한 후 서로의 손바닥을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창에 대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미리 준비해 간 성경과 내가 쓴 책을 그에게 전달하고 헌병대 구치소 계단을 내려오는데 소년병 같은 그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그 후 그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현재 국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세례도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면회를 가서 대화와 기도를 해준다. 어린 나이에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하니 본인도, 그의 부모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물론 그의 손에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더욱 고통스럽겠지만 말이다. 문득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난다. "그 짧은 나그네의 삶을 살면서 서로 미워하고 따돌리고 때리고 상처 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슴 아픈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생을 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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