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 땅끝에서온편지 ] 선교사, 항상 배우는 사람

강희영 선교사
2015년 10월 20일(화) 09:57

안식년을 마감하며 중남미 국가에 방문기회가 주어져 은혜로 사역을 감당하게 됐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는 모두 한 형제라는 벽의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을 보며 영화에도 나왔다는 남미 빈민가 옆 동네에서 주님의 사랑스런 천사들을 만났다. 창문에 나무로 바람막이를 해 놓은 그들의 학교 건물을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우리 동네도 그렇고, 여기는 다 그렇다"며, 당연한 것을 묻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순간 내 경험 만의 세계 속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인 자신을 보게 됐다. 그 지역이 열대기후이고 전기 공급도 원활하지 못해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는 것을 순간 잊었었다. 
선교지에는 현장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추운 곳, 더운 곳, 부유한 곳, 가난한 곳이 있으며, 이교도들도 있지만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정교회, 가톨릭교회 지역도 있다. 그 모든 곳에서 주님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삶을 살게 하셨다. 그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복음인가 아니면 한국교회의 시스템인가. 그것도 아니면 한국 사람들의 삶인가. 어쩌면 그 누군가는 필자처럼 순간의 오해로 복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해 전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전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이제라도 복음을 전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슬람 지역인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 십자가를 세운 것이 선교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생각해 본다. 지금은 소그룹 가정교회가 제대로 건물을 갖춘 교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필자도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간혹 십자가가 떼어진 선교현장을 보게 되면 가슴한 곳이 아파온다. 보이는 십자가 보다는 복음이 중요하지만 말이다.

배고픈 지역에 나누어지는 빵이 복음일까? 복음의 접촉점으로 사용되는 도구가 세밀한 배려가 없으면 오히려 독으로 변해 군중의 욕구를 채워주는 새로운 우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제자 삼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제자들과 예수님처럼 동행하며 가르쳐야 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필요하며, 가르치기에 앞서 그들과 동화되기 위해 문화와 소통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생기고 복음을 가르쳐 제자로 삼을 기회도 마련된다. 그래서 선교사는 항상 배워야 한다.

필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아픈 경험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은혜 속에 지속적으로 변화와 치유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모든 것을 주님이 이루셨고 주님이 함께해 주셨다고 고백하며 연재를 마치고 싶다.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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