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12~1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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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8일(목) 09:50

월-강성해가는 다윗
본문 : 대상 11:1~9
찬송 : 435장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성경 안에는 수많은 위대한 신앙인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엘리야, 다니엘, 삼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과정에 등장한 인물들에 불과하다. 성경은 그러한 훌륭한 인물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물들을 만들어 가시면서 역사를 이끌어 가신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이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기에 다윗이라는 사람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일까?
 
하나님은 다윗을 강성하게 하셨다. 9절에서 다윗이 점점 강성해진 이유를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이 강성해진 것은, 강력한 군대, 뛰어난 장군들, 병사들의 용맹이 다윗과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다윗이 강성해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은 강하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청년이 은혜를 받고 다가와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목사님의 말씀대로 바른 삶을 지속할 수 있습니까?" 목사님이 연필 한 자루를 꺼내더니 손바닥을 펴고는 흔들리는 손바닥 중앙에 세워보라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자 목사님이 다른 손으로 연필을 움켜쥐고는 바로 세워 보였다. 청년은 실망하여 "그렇게 연필을 움켜잡으면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했다. "우리의 삶은 이 연필과 같습니다. 무능력 그 자체입니다. 똑 바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단단히 붙잡아 주시면 이렇게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셔야 똑바르고 바른 삶을 지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강성해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임재 하시어 단단히 붙잡아 줄 때 가능하다.
 
다윗이 강성해지기 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다윗이었다. 오랫동안 하나님은 다윗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신 것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20년전 목동 시절에 이미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 후 20년간 그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다. 그 시절이 다윗이 강해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이 때를 정하시고 방법을 정하신다. 인간이 강성해 지는 때는 하나님 손안에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다윗을 강성하게 만들어 가셨음을 깨닫습니다. 연약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사오니 우리 또한 강성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덕 목사
화정교회

화-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본문 : 행 19:1~7
찬송 : 197장

신앙생활의 수준을 물어볼 때 첫 질문이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이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기본적인 신앙고백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 신앙의 정도를 확인하는 질문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는 세례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령에 관한 것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삼천명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믿음생활의 첫 시작이 세례를 받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세례는 오늘날의 세례와 비교하면 한 차원 더 성숙된 믿음의 고백이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 세례였고 그 안에서 부활의 모습으로 다시 일으킴을 받은 것이 세례자의 고백이었다. 이 고백은 자신이 십자가에 이미 못박혀 죽었기에 어떤 모습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것이라는 신앙적 결단이 담긴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바울은 에베소 지역에 와서 세례 받은 사람들을 향해 가장 먼저 신앙의 정도를 묻기 위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는 물음이었다. 이것은 "세례받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를 넘어 그 이상의 진지한 질문이다.
 
바울의 질문에 대해 성령이 계심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에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믿을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조금은 불편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또 그보다 앞서 누가복음에서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위로부터 능력을 임하여질 때까지 성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확증적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강력한 복음전파의 역사가 시작되어 초대교회가 태동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 생활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서로에게 물을 수 있는 영적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이 질문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동일하게 울려 퍼져야할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모든 삶 속에서 성령님과 동행하고 성령님께 이끌린 바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정우 목사
시온교회

수-고난의 의미
본문 : 시 126:1~6
찬송 : 524장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두 가지를 선포하고 있다. 하나는 이 위대한 사건을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건은 기쁘고 감격스러운 사건이나 뼈아픈 역사였고 고통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그런 실패는 반복돼서 안된다는 것이다. 이 시편은 감격으로 시작한다. 꿈꾸는 것 같고, 입에 웃음이 가득했고, 찬양이 입에 가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의미심장한 말로 끝맺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눈물이 있어야 기쁨이 따라오게 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쁨과 감사를 유지하려면, 다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벨론에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70년의 눈물과 뼈아픈 고통의 세월이 있었다. 그 세월을 인내하고, 버티어내고, 살아냈을 때 드디어 엄청난 기쁨과 감사의 때가 찾아오지 않았냐는 것이다. "고난은 숨겨진 축복이다"라고 한다. 이 말은 고난을 다른 시각에서 보자는 것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여기서 고난이라는 단어에 실패를 집어넣어 보면 "실패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가 된다.
 
실패 자체가 좋을 리 없다. 그러나 그 실패로 인해서 더 큰 유익 즉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주의 율례를 배운다는 것은 그 율례가 내 것이 된다는 것이다. 고난이 유익이 되서 내 것이 되면 더 이상 고난은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사 49:18)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라고 했다. 여기서 '모든 무리'를 '모든 실패와 고난'으로 바꿔보면 "그 모든 실패와 고난을 장식처럼 몸에 차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나를 괴롭히고 실패하게 했던 것이 이제는 나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꺠듣게 될 때 그 실패는 오히려 빛이 나고, 자랑이 되고, 장식이 된다.
 
오늘의 기도
 
실패와 역경이 오히려 자랑이 되고 간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철 목사
명성제일교회

목-겨자씨 한 알
본문 : 막 4:26~32
찬송 : 496장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 한 알로 비유하시면서 "겨자씨는 땅에 심길 때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라면 모든 풀들보다 커져서 그 그늘에 새가 깃들일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존재가 매우 미미하여 겨자씨 한 알 속에서 미래에 일어날 영향력을 보셨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본문에 앞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옥토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심든지 먼저 마음의 밭에서 열매가 맺어져야 된다. 만약 농부가 마음에 농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해 농부의 밭에 심은 농사는 대수롭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씨를 대충 뿌릴 것이고 그 결과 농사는 완전히 망칠 것이다. 먼저 믿음 안에서 우리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드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마음의 밭의 상태는 어떤가? 길가와 같이 강퍅하지는 않은가? 세상의 것이 미리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하늘 생명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 깨끗이 청소를 해서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들자. 그리고 그 속에 겨자씨같이 작지만 한 알의 희망을 심어보자. 예수님께서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을 보았듯이 우리도 희망을 보고 우리의 삶 속에 한 알의 겨자씨로 살아가자.
 
지금은 세상을 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야인 시절 무려 27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딸이 아이를 낳고 면회를 왔다.
 
그는 손주의 이름을 '희망(Hope)'이라고 지으면서 "너는 희망이야. 감옥에 있는 동안 희망이 나로부터 떠나간 적이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 감옥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심었고, 결국 그가 심은 희망이 싹터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은 철폐되었다.
 
예수님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했다.
 
우리는 겨자씨 한 알같이 미약한 존재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삶의 자리에서 사랑으로 복음의 씨앗을 심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 알의 겨자씨 속에서 희망을 보게 하시고 믿음으로 씨를 뿌리게 하옵소서. 제가 속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국환 목사
대구효촌교회

금-십일조 신앙
본문 : 신 14:22~29
찬송 : 50장

 교회에서 십일조 얘기를 하면 반응이 여러 가지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 "또 십일조 얘기야?"라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불교, 천주교 다음으로 나왔는데 개신교에 대한 거부감의 큰 이유가 바로 '십일조 헌금'이라고 한다. 교회 바깥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십일조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나 필자의 결론은 "그래도 십일조는 있다!"이다. 필자는 교회에서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거의 안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일조는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십일조 신앙'때문이다. 성경에 나온 십일조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왜 십일조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물질만 아니라 시간과 내 인생 전체의 십일조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이렇게 믿는다. "그래도 십일조는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그리고 내 두 자녀에게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라고 가르칠 것이다."
 성경 전체에 나온 십일조 신앙의 정신에 대해 간단하게 세 가지로 정리하려 한다.
 첫째, 십일조 신앙은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헌금뿐 아니라 시간, 건강, 관심, 생명까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본문 23절에서도 십일조를 드려서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둘째, 그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최소한의 몫이 있다는 것이다. 내 모든 소유가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인정한다면 얘기가 쉬워진다. 하나님은 그 소유 중에서 우리에게 최소한의 몫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 최소한의 몫이 바로 10분의 1이다. 본문 29절에 십일조를 가지고 기업이 없는 레위인이나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돕는 사업을 하겠다는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이다. 따라서 십일조는 최소한의 몫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그 나머지를 나 자신을 위해 쓰라고 허락하신 것이다.
 
셋째, 그렇다면 10분의 1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10분의 9는 내 맘대로 써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다. 내 소유의 전부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 나머지도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써서는 안 된다. 함부로, 헤프게 쓰지 말고 절약하고, 죄 짓는 일이나 육신의 쾌락을 위한 일에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재물과 시간과 소유의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건전한 십일조 신앙을 배워 재물뿐 아니라 건강, 시간, 생명까지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잘 관리하고 사용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하준 목사
효자교회

토-말하는대로
본문 : 민 14:26~38
찬송 : 546장

오늘 본문에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참 무서운 말씀이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1명씩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도 10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모세의 명대로 그들은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했다. 그리고 돌아와 모세와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보고한다. 그런데 같은 장소를 다니고 같은 것을 보았건만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2명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크게 낙담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한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옷을 찢고 외친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지만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에게 가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의 긍정적인 보고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심지어 돌을 들어 치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이에 화가 나셨고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기도한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마음을 심판하겠다는 마음을 돌이키셨지만 죄의 값은 치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출애굽 1세대는 다 죽고, 2세대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한편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내가 오늘 어떻게 말하는가는 내일의 나를 결정짓는다. 힘들고 어려워도 긍정적이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긍정적인 말, 믿음의 말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찬규 목사
장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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