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도발사건을 통해서 본 '수령 신격화'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9월 01일(화) 14:38

지난 8.4 북한의 비무장 지대 목함지뢰 도발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은 사흘 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일단은 화해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긴장 도발-협상 화해-원조 탈취'는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이지만 이번 지뢰 도발 사건의 경우 북측은 남한이 확성기 대북방송 재개라는 초 강수로 대응하리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 한 것 같다. 이번 마라톤 협상의 촛점이 남측의 도발 사과 요구와 북측의 확성기 대북방송 중단으로 모아진 사실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북측이 집요하게 확성기 방송중단을 요구한 것은 이른바 '최고 존엄'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불경'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며, 그 근저에는 '수령신격화' 유지라는 수령독재체제의 최 우선적 가치가 바탕이 되고 있다 할 것이다. 아마도 협상이 결렬됐더라면 북측 협상 대표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수령독재체제의 특성은 폐쇄, 고립, 군사적 긴장, 인민 우매화, 수령 신격화로 요약할 수 있지만 그 핵심적 요소가 수령신격화이며, 나머지는 수령신격화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수적 요소들일 뿐이다. 수령독재체제의 온갖 문제점은 불완전한 인간인 수령을 완전한 신적 존재로 신격화하는 사실로부터 야기된다. 수령신격화를 명문화한 것이 수령지시의 완전성, 무조건성, 대를 이은 충성으로 요약되는 '유일사상 10대원칙(1974)'이며 이는 기독교의 십계명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완전무결한 수령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고, 김일성의 혁명가계인 '백두혈통'에 무조건 충성을 바치는 수령독재체제 아래서 인민은 우매화되고, 자신의 주체적 의지를 상실한 비주체적 피동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오늘날 북한 위정자들이 국제화, 개방화의 세계적 조류를 역행해서 폐쇄, 고립, 군사적 긴장 조성에 집착하는 것은 수령신격화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불가피한 질곡이라 할 수 있다. 

수령독재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수령신격화가 체제 유지의 바탕인 동시에 최대의 위해 요소가 되는 이율배반적 양면성을 띠고 있는 점이라 할 것이다. 수령신격화의 폐단이 극명하게 반영된 것이 경제 위기이다. 경제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성장, 발전하는 데 수령신격화의 극단적 폐쇄성과 경직성이 경제의 정상적인 성장, 발전을 저해하면서 만성적 경제 침체를 유발하고, 이 것이 수령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수령신격화와 관련해서 유의할 것은 수령 자신이 신격화에 걸 맞는 통치 카리스마를 스스로 구축해야 하는 불문율이 수령독재체제를 떠받치는 바탕이 되고 있는 점이다. 단순히 김일성 혁명가계의 혈통을 계승한 사실 만으로는 후계자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수령신격화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김일성은 상당 부분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항일 빨치산 투쟁의 건국신화를 통해 자신의 카리스마를 구축할 수 있었다. 김정일 역시 황장엽 비서가 만든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유일영도체제를 구축한 사실과 94년도 미북 제네바 핵 협상을 통해 미국과의 일전도 불사하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원조를 탈취한 사실을 통해 인민들에게 통치 카리스마를 과시할 수 있었다. 

반면, 김정은의 최대 고민이 부친 김정일이 이미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통치카리스마 구축에 투입했기 때문에 자신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핵무기도, 미사일도, 전쟁 위협도 원조탈취 수단으로서의 효용이 한계에 달해 있고 자신의 통치 카리스마를 입증할 묘안이 없다는 점이 엄청난 부담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초조한 나머지 공포정치로 자신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구축하려고 무리수를 쓸수록 정권 안정도, 경제 안정도 둘 다 놓치는 악 순환이 반복되면서 체제 불안이 가속화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정치는 가열될 것이고, 지배계층 간에 자신과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살 길을 찾으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서서히 수령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적신호가 켜질 것이다. 북한이 남한이 감당하기 벅찬 민란이나 정변 등 경착륙을 하기 보다는 집단지도체제로 연착륙을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공존의 정착과 진정한 남북 간의 경협을 통한 궁극적인 통일을 기약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의 사령탑인 수령이 사라지는 경우 남조선 적화도 핵 무기도 역사의 뒤 안 길로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유한한 인간을 전지전능한 신처럼 떠 받드는 수령신격화의 오만과 불경이 수령독재체제의 종말을 재촉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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