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

[ 논단 ] 주간논단

채영남 목사
2015년 09월 01일(화) 14:32

올해로 광복 70주년이다. 우리는 강산이 일곱 번 변하도록 잊지 않고 이날을 기념한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까지의 희생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의지가 우리의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다시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지 70년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다. 광복과 분단, 그리고 갈등과 대립의 역사이다. 여기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있다. 또한 언젠가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전쟁의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이유로 유ㆍ무형의 충돌이 한반도의 허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동과 서로 나뉘어졌다. 지역간의 갈등은 물론이요 세대와 계층간의 갈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반목과 다툼이 사회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인하여 치러야 할 비용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1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제2차 국민대통합 심포지엄에 의하면, 2010년 우리사회의 사회갈등 수준은 OECD 가입 27개 국가 중 두 번째로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최대 246조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이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인 375조 4000억원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더 이상 사회적 갈등에 대하여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비용도 문제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반목으로 파생되는 사회적 갈등은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우리 성총회는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남과 북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사업들은 물론이요, 동서의 지역갈등 해소 및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해왔다. 이제 100회기 총회에서는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의 주제로 더욱 적극적인 해결 방안들을 찾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치유와 화해의 생명 공동체 운동'을 보다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운동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사회 갈등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의 존망과도 직결된 문제다. 이러한 이유로 각계각층에서는 인력과 비용을 들여가며 연구하고 있지 않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복음 증거의 대상이 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환경을 변화시켜야 할 중요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되는 장애물을 거두어 내는 것 역시 우리의 소명이지 않겠는가? 우리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난 한국교회사를 되돌아볼 때, 장로교는 분열의 역사였다. 물론 신앙의 노선과 가치의 차이에 의해 분립되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반목과 갈등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승적 관점에서 볼 때에 포용을 이루어낼 용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61년 전 제39회 총회에서는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참회 기도를 드린 바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다시 꺼내어 되돌아 본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참회하는 일은 자신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한국장로교회가 분열되었음에도 우리 성총회는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1995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와의 신년하례회의 교류를 비롯하여 2000년 제85회 총회에서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주관으로 '한국장로교회의 날 공동개최 예배'를 겸해 연합으로 드린바 있다. 이제 100회기 총회에서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화해만이 생명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담긴 '화해와 미래를 위한 비전 선언문'에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화해는 상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쌍방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화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결코 손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루어낼 수 없다.
 
우리 성총회의 자랑이자 역사 가운데 숨 쉬고 있는 포용의 정신을 되살리자. 총회와 노회, 교회와 성도가 하나 된 마음으로 '화해'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행동으로 나아간다면 이 나라와 이 민족은 다시 회복과 부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암울한 19세기 말의 국난 앞에서도 회개와 화해, 협력으로 20세기의 희망으로 자리하였던 평양대부흥의 역사는 또다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의 간구와 증인된 삶을 요구하신다. 시대의 사명 앞에 주저함 없이 나아가자. 혼돈으로 가득한 갈등과 대립의 사회 가운데 예레미야의 영적인 지도력이 요구되는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자. 이를 통해 이 나라 이 민족 뿐만 아니라 천하만민이 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증인된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채영남 목사/부총회장ㆍ본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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