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상처난 복음의 열매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강희영 선교사
2015년 08월 25일(화) 17:09
▲ 이반키예브의 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키예브 도심에서 북동쪽 90km 떨어진 '이반 키예브'는 1986년 원전사고로 지역이 폐쇄된 체르노빌 근교에 있다. 이 지역에서는 재미교포 이현규 목사님께서 개척 후 현지인에게 이양한 3개의 교회가 있다. 이 지역을 돌아본 후 귀가하는 중에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는 '야릭(야라슬라브, 20세)'이라는 한 청년을 태우고 돌아오게 되었다.

홀로 길을 갈 때는 차에 사람을 태우기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면 한 생명을 구원할 수 있기에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40여 분 동안 시골길의 아름다움을 시작으로 늘 차에 가지고 다니는 '개혁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전도용 소책자를 소개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중에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의 방법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차창밖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저 세상이 아름답지 않습니까?"하니, 야릭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길은 저에겐 길고 지루합니다. 매일 버스로 일터와 학교를 오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사람으로 가득찬 버스 안에서 흔들리며 다니는 길이 뭐가 좋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에게는 생계를 위한 길이 내게는 즐거운 여행길이었던 것이다. 아차 싶은 순간의 정적이 어색했는지 그가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어 "나는 목사이고 선교사로 교회에서 일(라보따유)합니다"라고 말했더니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런 그에게 "우크라이나 사람들 모두가 성전과 관계된 말에는 '봉사(슬루샤츠)'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안다. 한편 부럽지만 이 단어가 주는 병폐는 봉사로 생각할 때 갖는 자율성이다. 하나님의 일은 봉사가 아닌 도리를 행하는 의무이다. 결코 취사선택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하니, "알았습니다. 꼭 교회에 나가 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와 전화번호, 메일 주소를 주고 받고 대화를 마친 후 그의 다음 목적지를 향한 정류장에 내려 주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주님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하게 하였다.
'내가 저들을 보는 시각도 지금과 같은 착오가 있지는 않은가? 선교를 한다고 달려온 지금까지 난 그들의 시각을 가진 적이 있는가? 자신의 열정에 취하여 일방적인 자신의 사역을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자신들의 집이 있고, 그 곳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복음이 저들에게는 어떤 것일까? 혹시 복음도 이들에게는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주님, 당신의 백성에게 전해야 하는 복음이 무엇입니까?'

갑자기 눈앞에 많은 선교 현장에서 복음보다 기도보다 먼저 환경에 이끌리는 행위로 복음의 열매에 상처가 나는 것을 보는 듯했다.

감사를 잊은 선교 현장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너희는 우리가 주는 것이니까 무조건 받아야 해!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복을 받았으니 당신들도…. 이러한 강제성 선심 공세를 통해 그들의 아픔을 키우지는 않았는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바울은 마게도니아를 향한 열정을 주의 인도하심까지 품고 기다렸다. 우리도 그들이 필요로 할때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순회 때마다 순수한 복음만으로 사역하며 복음을 보여줄 수 있는 본향을 향한 나그네이기를 소망한다.

"주 예수님, 당신의 성육신의 놀라우신 뜻을 찬양합니다. 뜻에 따라 심기워진 곳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강희영 선교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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